[영화] 행복해지고 싶었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던 여자의 이야기, 화차(火車, 2012)
행복해지고 싶었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던 여자의 이야기, 화차(火車, 2012)
화차(火車)는 일본 작가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다. 요즘 즐겁게 보고 있는 JTBC의 영화 리뷰 프로그램 방구석 1열에 고정출연 하시는 변영주 감독님의 작품. 해당 방송에서 항상 말을 조리있고 재미나게 하셔서 그 분의 작품이 어떤지 궁금했는데, 마침 왓챠플레이에 있어서 감상할 수 있었다.
영화의 장르가 미스터리이기 때문에 스포일러는 최소한 줄여서 감상을 써보도록 하겠다. 결혼을 앞두고 있는 문호(이선균 분)와 선영(김민희 분). 문호의 부모님을 뵈러 내려가는 길에 들른 휴게소에서 문호가 커피를 사오는 사이, 선영이 갑자기 사라졌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집으로 돌아와보니 선영의 물품 역시 모조리 없어져 있었다. 연락이 되지 않아 실종신고까지 했지만 경찰의 수사는 지지부진. 결국 문호는 휴직 중인 형사 사촌형 종근(조성하 분)에게 선영을 찾아 달라며 부탁을 하게 된다. 그러나 문호가 알고 있던 인적사항으로 찾아낸 선영은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심지어 자신의 약혼녀와 행동반경이 겹치지도 않는 생판 남. 진짜 선영의 행방 역시 묘연하다. 그렇다면 결혼까지 약속했던 그녀의 진짜 이름은 무엇이며 대체 누구일까?
주인공 선영(김민희)이 실종되면서 전개되는 내용이라 자연스럽게 문호와 종근에게 100% 몰입하면서 감상할 수 있었다. 초반에는 선영이 사라진 이유가 문호에게 얘기하지 않았던 과거의 빚 때문인가 했으나 그녀의 흔적을 따라가면서 하나씩 이상한 부분이 밝혀진다. 결혼을 앞두었을 때니까 과거 빚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지 못할 수도 있지, 생각하고 있다가 아예 다른 사람의 이름 아래에서 인생을 살고 있었다는 것이 밝혀지는 순간, 이 여자는 대체 과거에 무슨 짓을 저질렀기에 본인의 이름을 쓰지 못하는 것일까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된다. 흥미진진한 전개. (물론 문호는 죽을 맛이겠지만...)
종근은 선영(김민희 분)이 진짜 선영의 실종과 관련된 나쁜 짓을 저질렀기 때문에 네 앞에서 사라진 거라며 잊으라고 타이르지만, 문호는 믿고 싶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문호의 회상 속의 선영은 항상 사랑으로 충만해 있고 행복해 보이기 때문이다. 결혼하고 나면 두 사람 앞에는 축복만이 있을 줄 알았는데 눈 앞에서 놓친 기분일테니까.
자칫하면 뻔하게 느껴질 후반부 반전도 배우들의 연기력 덕분에 긴장을 놓치지 않고 볼 수 있었다. 특히 가짜 선영 역할을 맡은 김민희의 유니크한 마스크 덕분에 의뭉스럽고 미스테리한 선영의 캐릭터가 잘 구축된 것 같다. 범죄 현장에서의 표현력에 소름이 끼쳤다. 리뷰를 보면 다들 이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들 하더라. 나는 김민희의 연기를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에서 톡톡 튀는 역할로밖에 본 적이 없어서 몰랐는데, 연기력이 대단한 배우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사생활이 매우 아쉬운 배우라고나 할까...
이선균의 경우 진짜 선영의 고향에 내려가서 짜증을 부리는 모습이 너무 리얼해서 진지한 와중에도 웃겼다. 정말 짜증을 어쩜 이렇게 리얼하게... ㅋㅋㅋㅋ
화차는 일본 요괴 민화 쪽에서 쓰이는, '악인(惡人)의 시체를 지옥으로 데려가는 귀신'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원전인 불교에서는 악인들이 지옥에 실려가는 도구이자 형벌을 줄 때 쓰이는 불타는 수레라는 뜻. 영화를 다 본 후 제목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면 그 수레 속에 갇혀 있을 선영이 불쌍하게 느껴진다. 개인적으로 한 사람이 잘못된 선택을 하기까지에는 수많은 사회 구조적 병폐가 저변에 깔려있다고 생각한다. 선영의 경우에는 수억의 빚을 지고 나타나지도 않는 친아버지라는 존재가 문제였다. 결국 그 누구도 도와주지 않았기에 그녀는 지옥을 경험해야 했고 스스로 다시 태어나길 선택했다. 비록 그 수단 때문에 파멸에 이를지라도... 부모님의 물려준 수억의 빚이라는 설정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기도 해서 평범한 행복을 갈망했던 그녀가 더 안타까웠다.
만일 내가 그녀의 상황이었다면 과연 헤어나올 수 있을지 생각해보게 되는 영화. 임팩트가 커서 원작 소설도 한 번 읽어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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