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말모이(MAL·MO·E: The Secret Mission, 2019)
말모이(MAL·MO·E: The Secret Mission)
최근 몇 년간 일제강점기 시대를 다룬 영화 개봉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참고로 그 중에서, 아니 한국 영화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암살이다. 일제강점기를 다룬 영화들은 될 수 있으면 챙겨보려고 하지만 결과물에 왜곡된 시대상이 담겨있거나 너무 뻔해 작위적인 경우가 있어서 걸러야 할 때도 있다. 말모이는 택시운전사 각본을 맡으셨던 엄유나씨가 감독과 각본을 맡으셨다고 해서 극장에서 꼭 보기로 마음을 먹었더랬다.
1월 26일에 관람하고... 3월 1일에 올리려 했으나 결국 미루어져서 지금에서야 올리는 후기.
유해진 배우가 맡은 판수는 극장에서 일을 하다가 사고를 쳐서 해고된다.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아직 어린 딸을 키워야 하기 때문에 돈이 필요한 상황. 결국 경성역에서 돈 많아 보이는 정환(윤계상)의 가방을 훔치려다, 한바탕 추격전을 찍고 결국 실패하고 만다. 그 후 가까스로 찾은 재취직 자리는 아뿔싸! 정환이 대표로 있는 조선어학회희 심부름꾼이었다. 판수가 훔쳐가려던 가방 안에는 다양한 우리말을 모아놓은 원고가 있었기 때문에 정환은 판수를 고용하는 것에 결사반대한다.
게다가 판수는 까막눈이라, 일을 잘 할 수 있을지 염려가 되는 상황. 결국 조선어학회 회원들의 부탁 때문에 채용을 하기야 하지만... 이렇듯 정환과 판수는 삐걱거리게 된다. 먹고 사는 게 바빠 말과 글이 왜 중요한지 모르던 판수는 글을 하나씩 깨우쳐가면서 읽는 재미를 알게 되고, 사투리 모으기에 어려움을 겪던 조선어학회 회원들을 자신의 온 인맥을 동원하여 도와주기도 한다. 정환과의 갈등은 딸내미 순희를 내세우기도 하고 같이 술을 마시기도 하고 이러저래 풀어나간다. 이 과정이 여느 영화와 같이 뻔하면서도 유머러스하다.
개인적으로 운수 좋은 날 읽으면서 판수가 밤새워 펑펑 우는 장면은 정말 웃겼다. ㅋㅋㅋㅋ 한국인이면 모를 수가 없는 김첨지의 스토리~
일본 정부에서 말모이 작업을 본격적으로 방해하는 부분부터 점점 더 영화에 빠져들게 되었다. 조선어학회 회원들을 여러방면에서 감시하고, 협박하기까지 하는데 과연 무사히 말모이 작업을 마칠 수 있을까? 걱정이 되면서도 화가 나기도 하고, 저 때 나라면 어땠을까, 내가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자문자답을 하면서 감상했다.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도 우리나라 말을 지키기 위해 몇십년의 세월을 꼬박 바치면서 연구했던 당시 조선어학회 회원들... 사전 편찬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달려와 도움을 주었던 국어교사들, 학생들 모두 존경스러웠다. 특히 마지막 극장 장면에서는 눈물이 계속 펑펑 나서 혼났다...
영화에서 나오는 유일한 조선어학회 여성 회원 구자영 역을 맡은 김선영 배우의 연기가 아주 좋았다. 우현 배우는 영화에서 보면 항상 반갑다. ㅎㅎ
그리고 순희는 정말 귀엽다. 호 떡 사 주 세 요 ~
호떡이 왜 호떡인지 순희같은 아이들에게 걱정없이 설명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한국어는 현존하는 3천개의 언어 중 고유의 사전을 가지고 있는 단 20여개 언어 중 하나이며 한국은 2차 세계대전 후 독립한 식민지 국가들 중 거의 유일하게 자국의 언어를 온전히 회복한 나라이다.
시대가 시대인지라, 마냥 행복하기만 한 결말은 아니지만 따스한 인간미와 희망이 느껴져서 좋았다. 일제강점기 영화를 무장 투쟁이 아닌 다른 관점에서 다룬 점도 좋았다. 민족대명절 설날까지 쭉 걸려있을 줄 알았는데.... CGV가 극한직업을 밀어주는 바람에 극장에서 상당히 일찍 내렸다. 그래서 생각보다 흥하지 못해서 참 아쉽다. (손익분기점은 넘김!) 감성팔이 영화가 아니냐, 라는 평이 있던 것 같기도 한데, 이런 감성팔이라면 꾸준히 해줬으면 좋겠다. 어거지가 아니라 마음 따뜻해지는 감성이니까.
'보고 듣는'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공연] 죽음마저 사랑에 빠지게 한 아름다운 황후, 뮤지컬 엘리자벳 (22) | 2019.04.23 |
---|---|
[전시]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보물 展 @ 국립고궁박물관 (18) | 2019.04.03 |
[영화] 정신병원에서 사라진 환자를 찾아라! 셔터 아일랜드(Shutter Island, 2010) (13) | 2019.01.31 |
[영화] 행복해지고 싶었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던 여자의 이야기, 화차(火車, 2012) (28) | 2019.01.03 |
[영화] 반전을 알고 봐도 재밌는 식스 센스(The Sixth Sense, 1999) (19) | 2018.12.28 |
댓글
이 글 공유하기
다른 글
-
[공연] 죽음마저 사랑에 빠지게 한 아름다운 황후, 뮤지컬 엘리자벳
[공연] 죽음마저 사랑에 빠지게 한 아름다운 황후, 뮤지컬 엘리자벳
2019.04.23 -
[전시]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보물 展 @ 국립고궁박물관
[전시] 리히텐슈타인 왕가의 보물 展 @ 국립고궁박물관
2019.04.03 -
[영화] 정신병원에서 사라진 환자를 찾아라! 셔터 아일랜드(Shutter Island, 2010)
[영화] 정신병원에서 사라진 환자를 찾아라! 셔터 아일랜드(Shutter Island, 2010)
2019.01.31 -
[영화] 행복해지고 싶었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던 여자의 이야기, 화차(火車, 2012)
[영화] 행복해지고 싶었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던 여자의 이야기, 화차(火車, 2012)
2019.0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