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
지난 5월에 리디북스에서 무료 대여 이벤트를 할 때 다운 받아놓고 얼마전에 읽었다.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사회가 어떻게 여성들에게 외모 강박을 느끼게 하는지 인터뷰 사례로 표현하기 때문에 어려운 용어나 별도로 배경지식이 필요하지 않아 쉽게 읽혔다. 여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내용들로 가득하기 때문에 많은 여성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추천의 말
프롤로그
1 외모 강박
나는 예뻐질까요
여성스럽게
대상으로서의 나
2 외모 강박이 여성에게 미치는 영향
육체에서 정신으로, 정신에서 육체로
수치심
당신의 돈, 당신의 시간
3 미디어는 외모 강박을 부추긴다
왜곡된 미디어
SNS와 온라인 강박
4 외모 강박과 싸우는 방식
미디어 리터러시로는 충분하지 않다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5 어떻게 외모 강박과 싸울 것인가
볼륨을 낮춰라
보디 토크를 멈춰라
겉모습보다 기능
자신의 몸을 사랑하는 법
거울로부터 고개를 돌려 세상과 마주하라
감사의 말 주 참고문헌
신체 경험에 대한 여남 차이는 단순한 만족이나 불만족 이상으로 확장된다. 영국 서식스대학교의 연구자들은 영국 여성과 남성 수십 명을 인터뷰한 결과 여성이 자신의 몸을 좀 더 파편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여성은 자신의 각 신체 부위를 실망의 연속이라 표현했고 ‘나쁘지 않은’ 부위는 아주 드물었다. 배는 너무 출렁거리고 허벅지는 지나치게 굵으며 피부는 얼룩덜룩하고 머릿결은 푸석거린다. 각 신체 부위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언제든 따로따로 분리할 수 있다. 반면 남성은 자신의 몸에 대해 좀 더 전체론적인 접근법을 취하는 경향이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마도 남성은 신체적 능력에 대해 훨씬 더 많이 생각한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한 연구에 참여한 모든 남성은 모두 자신의 몸이 어떤 능력을 지녔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나 여성 중에는 그런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아마도 여성은 자신들의 몸은 행위가 아닌 관상용이라는 메시지를 내면화했을 것이다.
이 대목을 읽고나니 몇 개월 전에 읽었던 짧은 글이 떠올랐다. 여성에게 "자신의 눈에 대해 설명해 보라" 고 질문을 한다면, 그녀는 십중팔구 "눈이 조금 더 컸으면 좋겠어요, 쌍커풀이 있으면 좋겠어요, 속눈썹이 길었으면 좋겠어요" 등의 대답을 한단다. 반면에 남자는 "제 눈은 두 개고 시력은 1.5예요" 와 같이 답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즉 여성은 자신의 신체를 시각적으로 평가하는데 익숙해있고, 남성은 신체적 조건이 살아가는데 어느 정도의 편리함을 가져다 주는지 그 기능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이 말을 처음 접했을 때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나도 모르게 나 자신과 다른 여성들을 시각적으로 판단하는데 익숙해져 있구나하고.
우리는 여성에게 아름다움이 주는 권력을 누리라고 강조하는 이야기를 각종 미디어를 통해서도 쉽게 만날 수 있다. 아름다움은 다른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일종의 권력을 부여해준다. 그러나 이 권력의 성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정직해지는 것이 좋겠다. 우선 이 권력은 타고나지 않으면 획득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 할아버지는 이런 말씀을 자주 했다. “네 젊음이나 미모를 너무 자랑하지 마라. 그건 네가 노력해서 얻은 게 아니고 아무리 노력해도 간직할 수 없는 거란다.”였다. 우리는 아름다움이 민주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자주 잊는다. 그런 이유로 아름다움이 여성에게 주는 권력은 언제나 불평등을 내재하고 있다.
…메이크업은 여성의 의무가 아니다(물론 수많은 직장에서 여성은 실질적으로 화장을 해야 할 의무가 있긴 하다). 그러나 우리 눈에 띄는 여성이 모두 화장을 했고, 매일 보는 광고나 방송 프로그램, 영화 속 여성이 모두 화장을 했다. 그런데도 “아무도 너한테 그 제품을 사라고 하지 않았어.”라고 말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에서 받는 차별이 억울하면 예뻐져라, 날씬해져라" 와 같은 말은 폭력이나 다름 없다고 생각한다. 성형 수술로 예뻐지고 나서 남들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180도 달라지는 바람에 정신병 올 것 같다는 후기도 봤다. 외모지상주의인 이 사회가 미친 것이라고 밖에는 할 말이 없군.
많은 여성과 일부 남성이 여남 간의 임금 격차에 대해 격렬히 비난하는 동안에도 여남이 외모에 들이는 돈과 시간의 차이는 간과된다.
수업 중 나는 학생들에게 아름다움을 위해 얼마나 돈을 쓰는지 기록하게 한다. 단, 의상 구입비는 뺀다. 왜냐하면 필수적인 구매와 아름다움을 위한, 부차적인 구매를 수치화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체육관 회원권이나 운동 수업료도 포함시키지 말라고 한다. 이것 역시 외모를 가꾸기 위한 운동과 건강 증진을 위한 운동을 명확히 구분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비누나 치약 같은 기본적인 위생용품은 포함되지 않지만 치아 미백 제품이나 특별한 미용 비누는 포함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그 외에 모든 아름다움을 위해 들이는 비용을 찾아보라고 한다. 화장품, 머리 염색, 비의료적 피부 시술, 제모, 면도 크림 등 모든 것을 말이다. 학생들은 자신이 소비하는 모든 외모 관련 아이템을 목록으로 작성하고 1년에 돈을 얼마 쓰는지, 몇 개나 구입하는지 기록했다.
'아름다움의 심리학'을 수강하는 학생들에게 아름다움에 얼마나 돈을 쓰는지 계산하게 한 뒤 다시 일주일간 외모에 쓰는 시간을 모두 계산해보게 했다. 여학생과 남학생 간의 차이가 일주일에 두 시간에서 다섯 시간까지 벌어지는 것은 뻔한 일이었다. “남는 시간에는 뭘 하나요?” 나는 남학생들에게 물었다. 비디오 게임을 하거나 잠을 잔다는 것이 가장 흔한 대답이었다. 수업을 함께 듣는 여학생들은 부러워했다.
…『아름다움이란 이름의 편견』의 저자 데버라 로드Deborah Rhode는 전문직 여성이 택시를 기다리느라 회의에 늦는 모습을 묘사했다. 전문직 여성의 필수 아이템은 하이힐이기 때문이다. 하이힐을 신은 전문직 여성은 회의에 늦지 않게 참석하더라도 로비와 복도를 고통스럽게 걸어야 한다. 이제 그녀가 회의실에 들어선다. 하지만 발이 너무 아프다. 자세를 바꿔본다. 그녀는 자세를 고쳐 앉고 다리를 다시 가지런히 모으느라 잠깐 회의에 집중하지 못한다. 그녀의 집중력과 생각은 어떤 대가를 치르는가. 또한 심리적 건강은 어떤 대가를 치르는가.
"좀 더 예뻐보이기 위해" 자잘한 물건을 장바구니에 담고서 가격에 놀랐던 지난 날이 떠오른다. 여름철이 되면 들이는 돈은 배가 된다. 노출이 심한 계절이니까. 뱃살을 감추기 위해서 보정 속옷, 해변에서 예쁘게 보여야 할 비치가운과 비키니, 물에서 번지지 않도록 워터 프루프 아이라이너와 마스카라 추가 구매. 아니면 속눈썹 연장. 선크림만으로는 부족하니까 하얗게 보이기 위한 미백크림, 말끔하게 팔다리 제모도 해야한다. 여름에 맞춰 네일과 페디도 받아야 하고 허옇게 각질이 나타나면 안되니까 팔뒤꿈치와 발뒤꿈치도 관리해야 한다. 다 하면 20만원은 우습게 쓰겠다. 그런데 이게 전부가 아니라는 거? 끊임없이 돈과 시간을 써야할 일이 생긴다. 그저 "보여지기 위해서".
누가 억지로 하래? 싫으면 안하면 되잖아. 라고 반박할 수 있겠지만 저렇게 관리하는 사람에게 대단하다, 멋지다, 예쁘다고 칭찬하는 것은 사실이고 여성은 외적 칭찬에 취약하게 길러졌으니 사회적 흐름을 거부하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 나만 해도 저거 다 해봤다. 남들 다하는데 안하면 바보된 기분 들잖아. 이제는 남들 다 하는데 안하는 사람이 더 멋지다고 생각하지만.
이 외에도 가슴을 찌르는 여러 사례들이 많다. 저자가 미국인이니 대부분이 미국인 여성이 겪은 일인데(한국계 여성의 사례도 나온다.) 어쩜 지구상에 태어난 모든 여자들에게 이처럼 가혹한 일이 벌어졌을까 싶다.
"오늘 거울 속 내가 별로여서 약속을 취소했습니다" 라는 말. 유머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도 저 이유로 대학 수업에 빠진 적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철없는 짓이었다? 아니다. 그 때는 진지했다. 늦잠을 자서 대충 입은 옷과 노메이크업으로 수업에 들어간 날, 한 남자 선배가 "오늘 아주 패셔니스탄데~ 왜 그러냐ㅋㅋ" 라고 놀린 적이 있기 때문이다. 친한 선배도 아니었기 때문에 더 상처가 되었다.
그 후엔 내 스스로 맨 얼굴로 학교를 가지 않는다는 룰을 만들었다. 메이크업에 1시간씩 소요되었고 늦잠을 자서 화장을 못하면 학교를 안갔더랬다. 그 당시 자존감이 충만했다면 무시하고 갔겠지만 (이것봐! 또 자기 탓을 한다. 그 놈이 나쁜건데) 고민을 털어놓을 오랜 친구도 곁에 없고, 남의 시선에 신경을 많이 쓰는 나이였기 때문에 그냥 그렇게 살았다. 지금 그런 일을 겪는다면 똑같이 막말을 해주겠지만. 저 선배뿐만 아니라 다른 남선배도 나의 피부 상태로 왈가, 또 다른 남선배도 내 곱슬머리 가지고 왈부한 적 있다. (그렇다고 그들이 못된 선배였던 것도 아니다. 평소에는 친절했음. 그냥 사회적으로 체득한 대로 여자 후배의 외모 지적을 하는 것은 그들에게 별 일 아니었을 뿐이다.) 난 그네들의 외견에 대해 한 마디도 얹은 적이 없는데.
이 책에서는 외적 칭찬 역시 지양하라고 한다. 거기까지는 바라지도 않을테니, 외모 지적은 안했으면 좋겠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죽는 것처럼 무심코 던진 말에 여성들은 외모에 돈을 더 쓰고 시간을 더 쓴다. 그 모든 게 자기 만족과 스스로 한 선택은 아닐 것이다. 말한 사람은 "넝~담ㅎ"하면 끝나겠지만, 나만 해도 n년이 지난 일인데 아직도 기억하고 있으니. 그런 순간은 꼭 영화 하이라이트처럼 생생하게 기억난다니까.
그러니 학교 후배가, 또는 회사 동료가 화장을 안하고 왔다고 "못 알아봤네, 화장 좀 하고 와라, 누구세요?" 와 같은 말은 하지마라.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농담이 아닐까 싶다.) 요즘은 중학생들도 A4 용지만한 파우치 안에 화장품을 가득 넣고, 대형 거울을 들고 다니면서 하교 후 화장에 1시간씩 쓰고 있다. 그 아이들이 되바라진 것이 아니다. 이런 잘못된 사회는 나부터 실천해서 바꿔야 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나의 몸에게 쓰는 편지.
책에서는 외형적인 면이 아니라 기능적인 면에 대해서 칭찬하라고 한다.
나의 두뇌에게.
너는 가끔씩 생각지도 못한 옛 기억을 떠올릴 정도로 저장력이 뛰어나.
덕택에 인간 아카이브가 되어 편하게 또 불편하게 산다.
나의 눈에게.
매번 렌즈 때문에 혹사당하는데도 건조증 없이 잘 버텨줘서 고마워.
앞으로는 널 좀 더 소중히 여길게.
나의 코에게.
냄새 진짜 잘 맡아줘서 고마워... (???)
나의 귀에게.
너는 일 좀 해라
나의 입에게.
맛을 잘 느껴줘서 고마워
네 덕분에 맛있는 거 잘 먹는다
나의 손에게.
타자 빨라서 고마워.
처음 하는 것도 평균 이상 가능해서 덕을 많이 봤다.
나의 팔다리와 운동신경에게.
좋은데 요즘 퇴화시켜서 미안해! 운동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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