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충격전 반전(反轉)의 반전(反戰) 영화, 그을린 사랑(Incendies, 2011)
이 영화는 예전에 추천을 받았던 적이 있었으나, 정기 결제 하고 있는 OTT에서 볼 수가 없어 미뤄두고 있었던 영화다. 결말이 충격적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번 회차 방구석1열에서 다룬다는 예고를 보고 어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포 당하기 싫어서 찾아보니 TVING에서 1,000원 개별 결제로 관람할 수 있길래 토요일 밤에 부랴부랴(?) 감상을 했다.
언제나처럼 초반 줄거리 설명만 하고 중대 스포일러는 적지 않았다.
영화는 캐나다를 배경으로 나왈 마르완이라는 여성이 사망하면서 그의 쌍둥이 남매 잔느와 시몽에게 유언을 남기면서 시작된다. 무덤에는 비석도 관도 필요없고 나체로 뒤집어 묻어달라[각주:1]는 내용이다. 대신, 그간 존재조차 알지 못했던 그들의 아빠와 손위 형제를 찾아 편지를 전달하면 쌍둥이 남매 앞으로 남긴 편지를 전해주고 자신의 무덤에 비석도 세우고 이름도 새기게 해준다는 어처구니 없는 유언. 자신의 어머니를 아무도 모르는 곳에 모욕적으로 묻히게 하고 싶은 자녀가 있을까? 시몽은 반발하지만, 결국 잔느는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남긴 미션을 수행하러 레바논으로 떠난다.
레바논으로 배경이 이동하면서 영화가 약간 관객들에게 불친절해지기 시작한다. 큰 문제는 안되지만, 영화의 배경을 눈치껏 파악해야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배경지식은 바로 레바논 내전이다.
레바논은 중동에 위치했지만 기독교 인구수가 상당한 국가이다. 로마가 기원전 64년에 레바논을 점령하고 서기 300년대에 기독교가 널리 퍼지게 된다. 동로마 제국이 쇠퇴한 이후로는 이슬람 제국의 영향에 있다가, 11~12세기에는 십자군 시대에 다시 기독교 세력의 지배를 받게 된다. 1516년에는 오스만 제국에게 점령당했다가 19세기에 들어서 마론파 기독교와 이슬람 드루즈교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 많은 기독교인들이 살해되었다. 이 때 프랑스가 개입하여 마론파 기독교인들은 자치권을 획득하고,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오스만 제국이 패한 이후 프랑스가 시리아와 레바논을 식민지로 삼아 통치하였다[각주:2]. 프랑스가 일방적으로 시리아의 영토를 레바논으로 편입시켰고[각주:3], 또한 1970년 요르단 내전 이후로 팔레스타인 난민이 레바논으로 유입되어 기독교인이 80%에 육박했던 오스만 제국 시절에 비해 무슬림의 비중이 우세해지기 시작했다.
이후 난민들이 많이 정착한 남부 지역을 PLO(팔레스타인 해방기구)가 지배하여 이스라엘과 빈번한 전투를 벌였으며 마론파 기독교인 역시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에 반대하는 팔랑헤 민병대를 결성하고 1975년 내전이 발생, 수많은 참상이 벌어졌다.
영화는 시간을 오가며 그들의 어머니인 나왈의 과거를 순차적으로 보여준다. 아랍 기독교인인 나왈은 무슬림 난민인 와합의 아이를 임신 후 가문의 명예를 더럽혔다며 가족들에게 죽임당할 위기[각주:4]에 처한다. 어찌저찌 무사히 아이를 낳아 고아원에 보내기로 하고, 나왈의 할머니는 아이를 나중에 찾을 수 있도록 오른쪽 발 뒷꿈치에 점 세개를 찍어 표시해둔다. 그 후 삼촌이 살고 있는 도시로 가 대학교에서 공부를 시작한다.
잔느는 나왈의 흔적을 찾으러 예전 엄마가 공부하던 대학으로 가 예전에 엄마가 크파르 리얏이라는 감옥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나왈은 과거 학교에서 신문부로 활동하면서 인권을 위해 난민 추방에 반대했는데 내전으로 인해 학교가 폐쇄되고 내전이 일어난다. 삼촌 가족들은 안전을 위해 모두 산으로 떠나려 하는데, 나왈은 자신이 낳은 아이를 찾기 위해 전쟁이 발발한 남부의 고아원을 찾아간다.
고아원 가는 길이 정말 산 넘고 물 건너 너무나 어렵다. 하지만 쌍둥이들에게 형을 찾으라는 미션을 준 걸로 보아 나왈의 첫째 아들을 찾는 것이 녹록치 않으리란 걸 이미 관객들은 눈치챘을 것이다. 첫번째로 방문한 고아원은 여자 아이들만 기르고 있었고, 남자 아이들이 있는 크파르 훗 지역은 이미 팔레스타인 난민 쪽 샴세딘 일당들에게 습격을 당한 이후였다.. 불타오른 고아원에서 그녀는 아들을 찾을 기회를 놓치고 만다.
이후의 진행 과정이 곧 스포일러이기 때문에 더 이상의 내용은 그만 설명하도록 하겠다.
아빠와 형을 찾는 내용이 영화 내용 전부이다보니...
영화는 끝나기 30분 전에 다다라서야 겨우 결말에 치닫게 된다. 전쟁의 잔혹한 면을 시종일관 담담한 서술로 표현하던 영화였던만큼 마지막의 잔혹한 진실은 관객들을 놀라게 한다. 편지를 읽는 장면에서는 눈물이... ㅠㅠㅠ
잔혹하고 슬픈 내용이 나올 수 밖에 없어서 평소에 전쟁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역시나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래서인지 좋아하지 않는 것치고 전쟁 영화 리뷰글이 많음(;) 중동 지역 역사에 대해 잘 몰라서 이해하기가 어려울 줄 알았는데, 은유 없이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서사의 흐름에 큰 어려움 없이 볼 수 있었다. 전쟁의 참혹함은 종교나 인종 상관 없이 누구나 다 끔찍하게 생각하니까 말이다.
증오가 증오를 낳고, 복수가 복수를 낳는 전쟁. 서로가 원치 않아도 악의를 퍼부어야만 했던, 전쟁에 휘말린 운명의 참혹함을 깨닫게 해주는 반전(反戰) 영화이자 놀라운 반전(反轉) 영화. 전쟁으로 인해 발생한 한 여자의 비극에 씁쓸해지면서도 끝없는 증오의 연결 고리를 끝내는 것은 역시 사랑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전쟁에 그을린 상처를 딛고서 모든 걸 용서하는 나왈이 존경스러울 정도다. 관객들은 알 수 없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 이후의 이 가족의 미래 역시 희망적일 것이라는 상상을 하게 된다. 나왈의 자식들이니 분명 가능하지 않을까.
18세 미만 관람 불가 영화로서는 잔인한 장면 몇 씬만 있고 심하게 자극적인 장면은 거의 없다. 영화의 러닝 타임이 2시간 남짓이라 꽤 길고 정적으로 영상이 진행되기 때문에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추천! 난 천원 결제 했더니 엄청 집중해서 봤음....ㅋㅋㅋ
※ 방구석1열에서 디아스포라 영화제를 소개해줘서 홈페이지를 링크해본다. 인천광역시에서 2013년부터 년마다 개최한 영화제로, 분단과 이산, 즉 난민과 이주민, 소수자를 다룬다. 올해는 2020년 5월 21일부터 23일까지 개최할 예정.
디아스포라영화제
분산과 이산의 디아스포라, 환대의 도시, 인천, 한국의 디아스포라, 디아스포라영화제
www.diaff.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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