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 :: 시골마을의 고품격 미술전시회, 제산컬쳐센터 개관기념 전시 「고요한 여백, 깊은 울림」
지난 8월 15일, 보은읍에 새로운 문화공간이 열렸다. 수업을 듣고 계신 분 중 한 분이 센터 이사장님 가족분이셔서 개관식에 초대까지 받았지만 이 때 서울에 갈 일이 있어서 방문을 못하고 있다가 개관기념 전시가 곧 끝난다기에 추석 연휴 때 겨우 짬을 내서 다녀왔다.

제산컬쳐센터가 건립되기 전에 이 위치에 있던 건물은... 내가 보은에서 제일 보기 싫어하던(...) 건물이었기 때문에 공사 내내 괜히 기분이 좋았다는. ㅋㅋㅋㅋㅋㅋㅋㅋ 싫어했던 이유는 건물이 상당히 컸는데 바깥의 페인트칠이 다 벗겨져서 밤에 보면 정말 무서웠기 때문이다.

제산컬쳐센터는 (주)인광그룹을 경영하고 계신 김상문 회장이 고향 보은에 사재 200억을 투자하여 지은 복합문화공간이다. 처음에 공사가 시작될 때 도서관이 생길 것이다, 군민문화센터가 생길 것이다 등 풍문이 많았는데 개관 후에 보니 5층은 전시장, 4층에는 신문사, 3층에는 사무실 (아직 임대가 되지 않은 듯 하다) 1층과 2층에 카페가 입점된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1층 카페에서 전시예매 문의를 하면 입장료 10,000원을 내고 (보은군민은 5,000원) 전시관람과 커피 or 오미자차 1잔을 무료로 마실 수 있는 시스템이다. 사실 카페는 몇 번 다녀왔는데 전시만 못보고 있었음.

처음에 도서관이 세워질 것이라고 소문이 나는 바람에 군민들은 왜 이런 개인의 이윤을 추구하는 건물이 생겼냐며(...) 뭐라 하시던 분들도 계셨는데, 애초에 군 소유가 아니라 개인 소유지에 개인이 세운 건물이기 때문에 너무나 당연한(...)... 흠...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전시회를 오천원 주고 보는 걸 이해를 잘 못하시더라는.
문화체험에 목말라 있던 2030들은 환영이지 않았을까? 나같은 경우는 오로지 전시회를 목적으로 서울까지 가서 보기도 하고 여행으로 간 도시에도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마음에 드는 전시가 있으면 시간 내어 관람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그간 보은에 미술관, 박물관 수가 워낙에 부족하여 아쉬웠었는데, 자그마하지만 미술 작품을 볼 수 있는 공간이 생겨서 좋다. 다른 게시물로 이어서 쓸 예정이지만 1층 카페가 북카페st인데다 공간이 탁 트여 있어 모임도 가능할 것 같아 외지인 분들이 보은에 방문하셨을 때 안내하기 좋은 곳이 되었다.

지하 주차장도 구비되어 있어 차를 끌고 오는 관광객의 빈도가 많은 보은에 주차 걱정 없이 만남의 장소가 하나 더 생겼다는 느낌.

제산컬쳐센터에서는 제산 아카데미 회원제를 운영하여 인문학, 문화예술, 지역발전 강좌와 답사를 제공한다고 되어 있다. 연간 10만원이면 괜찮은 가격이기도 하고 가입해봐도 좋을 것 같았지만, 나의 일정과 맞지 않을 듯 하여... 일단 패스... ㅠㅠ (퇴근이 거의 8시 쯤이라 강좌를 듣기 힘들다는요...)

추석 연휴에 방문했더니, 10월 12일까지 였던 개관기념 전시가 10월 2일까지 연장을 했고
추석을 맞아 전시장 입장도 무료로 개방했다. 럭키스리잖아~?

원래는 1층 카페 카운터에서 전시료 지불을 하고 카운터 왼쪽의 엘리베이터로 진입하여 5층으로 이동하면 된다.
(윗 사진 오른쪽으로 쭉 가면 화장실이 있다)



5층으로 올라왔더니 화장실이 또 있어서 이용하기 매우 편해보였다.
사진 한 번 찍고 바로 전시장으로 입장.

전시장에서는 플래시 없이 사진 촬영이 가능하며 도슨트 해설사분이 계셔서 요청 시 작품 설명도 들을 수 있다.
방문 전에는 나도 도슨트 들어야지~ 생각했는데 어쩌다보니 귀가를 빨리 해야해서 그냥 혼자 관람하게 되었음. 해설사 분도 매우 열정적으로 해설해주고 싶어하셨기 때문에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이 방문하게 되면 꼭 요청해서 들으시면 좋을 것 같다.

전시장은 한 칸으로 매우 자그마하고 작품도 대략 열 몇 점이라 규모가 작은 전시회였지만,
김환기, 이우환 등 아주 유명한 미술작가들의 작품이 있다고 하여 기대가 되었다.
그리고 전부 회장님 소장품이라는 거... ㄷㄷ


전시장 양 끝에는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있었다. 제산아카데미의 강좌를 듣게 되면 위 공간에서 수강을 하는가보다.
카메라에다 미니 가방, 겉옷까지 들고 낑낑대고 있었더니 해설사 분이 중간 테이블에 짐을 두고 둘러봐도 된다셔서 그렇게 했다.

들어오자마자 이렇게 관람방향 이쪽이라고 안내해줬는데.
역방향으로 관람해버림. ^^;
관람 다 끝나고 알았다네요~

정방향으로 관람하면 위 작품부터 관람을 시작하게 된다.

나는 역방향이라서 위 작품부터 보게 되었다.
이세현 작가의 작품으로 동서양의 화풍을 합친 산수화 스타일의 연작으로 유명한 분이라고 한다. 푸른색은 조금 더 평화롭고 잔잔한 이미지고, 색깔의 특성 상 빨간색이 조금 더 강렬한 느낌을 주는데 이는 전쟁의 상처를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표현이라고 한다.

앤디 워홀 이후의 최고의 팝 아티스트로 불리우는 줄리안 오피의 작품. 발레단의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제목은 아마 발레리노와 발레리나의 이름이 아닐까 싶다.
작품마다 붙어있는 안내문에 QR이 있어 작품 해설을 간략하게나마 볼 수 있어 편했다.

남프랑스의 풍경과 한국의 기억이 섞인 이성자 작가만의 시야를 표현한 작품이라고 한다. 처음에 보았을 때는 석양에 잠긴 도시를 카메라 렌즈로 바라본 풍경인가 싶었는데, 찾아보니 작가가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비행기 안에서 바라본 창밖 풍경에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가운데의 동그란 원이 나중에 음과 양을 표현하는 시리즈로 발전했다는 정보를 얻었는데, 그걸 알고 보니 안쪽의 동그라미는 태극무늬를 형상화한게 아닌가 싶게 느껴졌다.

ANTI SYNCYTIOTROPHOBLAST & EMBRYONIC TETHER / 도나 후앙카 (2022)
달항아리를 그려낸 작품 양 옆에 볼리비아 계 미국인인 도나 후앙카의 작품이 걸려 있는 구간이 좀 특이하게 느껴졌다.
복잡하게 보이는 핸드페인팅 두 작품과 여백의 미가 돋보이는 달항아리 작품을 함께 두었더니 오묘한 대비의 매력이랄까?
조금 더 큰 벽에 간격을 띄워서 전시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약간 들었다.
(전시 공간이 작아서 어쩔 수 없음ㅋㅋㅋ)


꼭 보고 싶었던 이우환 작가의 작품! dialogue 라는 연작 중 두 작품이 있었는데, 제산컬쳐센터에 있는 두 작품은 파란색이 대표색이었다. (다른 dialogue 에는 주황색, 붉은색, 회색 등 다양) 마치 컵처럼 보이는 개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 번의 붓질따라 한번의 색이 덧입혀지는 궤적이 보인다.

붓질 모양을 잘 찍어보려고 했는데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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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11월 27일에 제작된 작품으로 서양화 재료인 캔버스 위에 색상을 물들여 동양화의 수묵화와도 같은 느낌을 주는 화법이라고 한다. 점묘화이지만 모든 점의 모양이 달라 톡톡 튀는 리듬감을 보여준다나?
내 감상은... 따뜻한 니트 재질의 목도리 같다(...) 크리스마스에 두르면 좋을 것 같다(?)
2018년 홍콩세일 옥션에 출품되었던 작품이라는데 낙찰가는 나와 있어도 낙찰자에 대한 말은 없는데 이 곳 보은에 전시되다니. 신기하고 좋다.

묘법이라 함은 '그림을 그리는 기법' 이라는 뜻으로, 프랑스어의 ecriture 와 같은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 박서보의 묘법은 그린 것처럼 선을 긋는 방법을 뜻하는데, 작품의 제작 방식은 캔버스에 물감으로 밑칠을 하고 → 마르기 전에 연필로 선을 그은 후 → 물감을 지워버리고 → 다시 선을 긋는 과정을 되풀이하였다고 한다. 후기에는 종이 대신 한지를 사용하여 커다란 작품 속에 선 긋기를 반복하면서 배경과 그리기가 하나로 통합된 세계를 표현했다고 한다.
작품을 보고 입체감이 느껴져서 오브제인 줄 알았는데 연필로 그린 것이라고 해서 충격.


많지는 않지만 한 개인이 소장한 작품을 한군데 모아서 보는 전시는 처음이라 신선하고 재밌었다.
시골마을에서 이런 고품격의 순수 미술작품들을 이렇게 관람하기는 정말 쉽지 않기 때문에 지금 대추축제로 보은에 방문하신 분들도, 미술관에 익숙하지 않은 군민들도 전시가 종료되기 전에 다들 한 번씩 둘러보고 오셨으면 좋겠다는 마음.
11월 2일에 전시가 종료되니 참고하세요 😁

제산컬쳐센터 바깥에는 이렇게 세 분의 동상이 있는데,
차례로 소개해보자면...

보은 출신 기업인이자 정치인인 해담 어준선. (어씨인걸로 보아 어윤중과 같은 가문이지 싶다)

보은 출생으로 임진왜란에 참여하였던 승병장 벽암대사. (법주사에 벽암대사비가 있다.)

보은 출생의 명망높았던 학자 충암 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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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거대한 글씨 때문에 군민들이 여기에 도서관이 세워질거라고 생각했을까 싶기도 했다.
알고보니 김상문 회장님이 낸 책의 구절 중 하나라고 한다.

건물 밖에 엄청 멋들어진 오브제가 매달려 있음. (정체가 뭔진 모름)
전시를 다 보고 나서는 1층 카페로 가서 음료 한 잔을 했다. 카페는 여러 번 방문한만큼 사진이 조금 쌓여있어 다음 포스트에 이어 쓰도록 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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