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 :: 월출산 국립공원, 극락보전이 멋진 무위사(無爲寺)
지난 글 : 2017/10/17 - [발자취 足跡/한국 大韓民國] - 강진 :: 길냥이와 함께 맞이하는 수류화개의 아침, 정성 가득한 시골밥상
아침 식사를 거하게 대접 받고 월출산 국립공원에 있는 무위사를 보러갔다. 이 곳의 존재를 나는 몰랐으나, 엄마가 선택한 곳이다. 간략히 설명하자면 875년 도선국사가 갈옥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한 것이 그 시초로, 역사가 아주 오래되었다. 고려 시대에는 선종 사찰이었으나, 조선 초기에는 천태종 17사로 지정되었으며 현재는 조계종 사찰이다. 세종 12년에 세워진 극락보전과 그 후 성종 때 그려진 벽화가 아주 유명하다.
가는 길에 녹차 밭이 있다고 하여 들렀는데,
이미 색이 갈색으로 변한 상태라 그리 아름답지는 못하였다.
너무 더운 나머지 움직이기가 싫어서 멀리서 찍은 무위사의 안내문...
이렇게 올려놓으니 아무도 읽을 수가 없네.
부처님 저의 귀차니즘을 용서해주세요. 루루팡 루루피...
무위사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해탈문. 현판에는 월출산무위사라고 적혀 있다.
다른 절하고는 조금 다른 느낌. 보통 이쯤에서 전각이 드러나는데 무위사는 다시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여사님 인증샷 찍어드렸다.
옆에는 불교용품 판매를 하는 곳이 있다. 이렇게 건물까지 지어서 판매하는 곳은 처음 봤다.
안으로 들어가보면...
보제루라는 곳이 나온다. 알고보니 이 건물, 보제루는 나중에 지은 거란다. 원래의 무위사의 정경과 다르다 하여 반기지 않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도 언급되어 있다.)
보제루를 통과하면 이렇게 계단 위에 전각들이 보인다. 선암사에 비하면 사람이 적고 휑한 느낌.
원래는 동백나무, 배롱나무도 있었다고 하는데, 무위사중수공적비라는 것을 세우면서 없애버렸다고 한다. 그 무위사중수공적비가 어디있는지도 모르겠는데 나무는 그냥 두지 싶었다.
전체적으로 휑한 느낌...
무위사의 극락보전. 쓸쓸해 보이지만 국보 13호의 중요한 건물이다.
세종 12년 건설로 무위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본래는 아미타삼존불과 벽화 29점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벽화 1점만 걸려 있고 나머지 28점은 전시관에 보관.
또다시 여사님 인증샷
영문을 알 수 없는 석판. 오래되어 보인다.
이름을 알 수 없는 3층석탑과 멀리보이는 선각대사탑비. 선각대사탑비는 고려시대에 지어진 석탑으로 보물 507호이다. 무위사 홈페이지에는 가람 배치도 및 전각 설명이 잘 되어 있지 않다. 이 3층석탑도 마찬가지.
극락보전으로 진입. 창호지에서도 세월이 느껴진다.
정면에 바로 보이는 아미타여래삼존벽화. 국보 제 313호이다. 앞의 삼존불 역시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삼존벽화는 고려 후기의 벽화 양식에 조선 초기 새롭게 대두된 양식을 담고 있는 유일한 불교 벽화로서 의의가 있다. 보기만 해도 꿈틀대는 것 같고 화려한 모습.
이 벽화는 무위사의 주불전인 극락보전 불단 뒤편 후불벽면에 그린 아미타여래삼존도로 화면 중앙의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관음·지장보살을 좌우에 배치하고, 상단 구름 속에 상반신 만을 표현한 여섯 구의 나한상과 2구의 화불을 배치한 간단한 구도와 형식을 보여준다. 이곳에서는 일반적인 관음·내세지의 아미타삼존형식을 탈피하여 고려 후기부터 유행한 아미타불과 관음·지장보살의 삼존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구복적인 정토신앙이 강하게 반영된 도상으로 조선 초기 수륙사(水陸社)로 지정된 무위사의 사격(寺格)과 잘 부합하는 도상으로 여겨진다. 특히 이 벽화는 화면 좌우 하단에 묵서로 씌어진 화기를 통하여 1476년(조선 성종7)에 군부인, 전직현감, 대선사를 비롯한 수십 명의 지역 유력자들이 불화제작에 참여하였다는 사실과 해련(海連)비구에 의해 벽화가 그렸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벽화는 제작시기와 조성 주체, 그리고 조성한 작가를 정확히 알 수 있다는 데서 조선 초기 불화 연구에 있어서 기준이 되는 중요한 작품이다.
- 위키피디아 참조
많은 사람들의 기원을 담은 연등이 번쩍번쩍하다.
극락보전 양 옆의 모습
지붕의 대들보에도 그림이 그려져 있었던 흔적이 있다. 극락보전 여기저기에는 이런 벽화가 꽤 남아 있다.
내부 동쪽 벽면 위쪽에 그려져 있는 벽화
오래된 느낌도 좋지만, 관리가 잘 되는 건지 걱정이다.
천장에는 용문이 있다.
작은 절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조용한 극락보전전의 아미타여래삼존벽화 존재감이 상당하다.
아무 생각 없이 찍다가 아미타여래삼존벽화 위 쪽의 세부 그림을 클로즈업 해봤다. 좌우 각각 3구씩 그려진 나한상과 그 위에 조그마한 2구의 화불. 정말 섬세한 작품이다. 보존 잘 해서 오래오래 봤으면 좋겠다.
아미타여래삼존벽화의 뒤쪽에는 백의관음도가 그려져 있다.
보물 1314호로 사진촬영금지다.
(사진은 문화재청에 실린 것으로 가져왔다.)
무위사 극락전 아미타후불벽화와 비슷한 시기에 조성되었다고 보이는 후불벽 뒷면 그림으로, 떠가는 듯 일렁이는 파도 위에 연잎을 타고 서 있는 백의관음입상이 그려져 있다. 당당한 체구에 옷자락을 휘날리며 오른쪽으로 몸을 튼 3/4 측면관인 이 관음보살입상은 두 손을 앞에 모아 교차하여 오른손으로는 버들가지를 잡고 왼손으로는 정병을 들고 있다. 간략화된 옷주름과 더불어 팔찌와 가슴장식 역시 간소화되어 있긴 하나, 힘있고 빠른 필치로 바람에 심하게 흩날리는 듯한 옷자락과 넘실대는 듯한 파도를 표현함으로써 강한 인상을 보여주고 있다. 관음보살의 뒤쪽으로는 해 모양의 붉은색 원이 그려져 있고, 앞쪽 위에는“해안고절처(海岸孤絶處) 중유낙가봉(中有洛迦峰) 대성주불주(大聖住不住) 보문봉불봉(普門逢不逢) 명주비아욕(明珠非我欲) 청조시인수(靑鳥是人遂) 단원창파상(但願蒼波上) 친참만월용(親참滿月容)”이라는 묵서의 5언 율시가 있다. 그리고 앞쪽 하단 구석쪽으로는 둔덕이 마련되어 있고, 관음보살을 향해 무릎을 꿇은 채 두 손을 벌려 손뼉을 치고 있는 듯한 자세의 노비구(老比丘)가 자리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비구 어깨 위에 머리를 뒤로 돌려 관음보살을 쳐다보고 있는 새[靑鳥] 한 마리가 앉아 있는 것인데, 백의관음에 비하여 비교적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 위키피디아 참조
카메라가 멋대로 찍은 구도의 사진
참배하러 오시는 불자님의 당당한 걸음이 마음에 든다.
처음 인상은 휑해서 그런가, 좀 서먹서먹한 느낌이었는데, 극락보전을 보고 나니 오길 잘했지 싶다. 그래도 너무 썰렁한 게 관리가 잘 되고 있는지 걱정된다. 극락보전에 있었던 28점의 벽화는 경내 성보박물관(벽화보존관)에서 관람할 수 있는데, 안내가 잘 되어 있지 않아서 들어가지 않았다.... 즉 못봤단 소리...
밖으로 나가기 전에 여사님이 종각을 찍으라고 하여 시키는 대로 했다.
해탈문 옆으로 보이는 월출산 한자락과 인사하며 무위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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