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 :: 하멜의 돌담길, 담쟁이 덩굴 가득 쓸쓸한 전라병영성


지난 글 : 2017/10/24 - [발자취 足跡/한국 大韓民國] - 강진 :: 전라병영성 앞 하멜기념관에서 만나는 헨드릭 하멜 (+이한영 생가)



하멜기념관 옆에는 돌담길이, 바로 앞의 큰 길을 건너면 전라병영성이 있다. 먼저 기념관에서 새로 배웠던 사실을 확인하려 하멜과 그 일행들이 노역생활을 하며 쌓았다는 돌담길 쪽으로 가봤다.




하멜의 돌담길

병영면 '한골목'에서 볼 수 있는 돌담은 우리나라 여느 돌담길과는 확연히 다르다. 다른 지역의 돌담은 높이가 나지막하지만 병영면의 돌담은 그 높이가 2~3m에 이른다. 지역 특서상 병사들이 말을 타고 다녔기 때문에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서 높이 쌓은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두꺼운 돌을 일렬로 쌓지 않고 얇은 돌을 15도 기울여 쌓되, 한 방향이 아닌 지그재그 형태로 쌓아 견고함을 더한 것이 특징이다. 2002년에 하인드브리스 주한 네덜란드 대사가 병영면에 와보고 빗살무늬 담장이 네덜란드 담장축조양식이라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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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의 병마절도사는 하멜 일행에게 비교적 관대하여 집과 텃밭을 주었고, 하멜 일행은 7년간 강진 생활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빗살무늬 돌담을 쌓는 방식을 알려주었다고 한다. 비록 계획에 없었던 타향살이었고 원치 않았던 시련이었지만 결국 하멜은 본국에 돌아갔고, 세상을 떠난 지 수백 년이 지났다. 그리고 이역만리에 자신의 이름이 붙여진 돌담길을 남겼고, 하멜 표류기를 남겼다. 그는 돌담을 쌓으며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지를 다졌을 것이다.


이곳에 돌담 하나를 쌓아보자. 세월 속에 시련도 사람도 모두 사라져도 그 시련을 이겨내려 했던 사람의 위대한 의지는 돌담으로 남을 것이다.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모습의 돌담이다. 돌담길이 쭉 이어지는 한골목은 근대문화재 264호로 지정되어 있다.




네덜란드 양식의 돌담을 강진에서 볼 수 있다니 신기하기만 하다.




옆으로 이어진 담장에는 시민들의 염원을 담은 시들이 게시되어 있었다.




차가 한 대도 다니지 않는 길을 건너면...




전라병영성이 바로 보인다. 복원사업이 한창이라 곳곳에 출입금지 안전망이 보인다.




들어서면 휑한 들판에 나무가 한그루 보인다. 

풀밭처럼 보이는 모든 부지가 전라병영성이었던 곳이다. 




복원 사업이 한창(?)이라는데 사람도, 공사판도, 건물도 없어서 더 쓸쓸했다. 언제쯤 완공될 수 있을까?

패널에 적혀있는 날짜보다 시간이 훌쩍 지났는데....



동문 벽면을 빼곡히 채우는 담쟁이덩굴




올라가려면 옆에 있는 나무 계단을 이용하면 된다.




성벽 건너 바로 민가와 하멜기념관이 보인다.



성터를 복원해놓긴 했는데 풀잎이 무성하여 가히 깊은 산 속 야영지 느낌...

푸릇푸릇하여 눈 건강에는 좋았다고나 할까.




저 멀리 포크레인 발견. 작업을 하고 있긴 한 거구나.




동문과 서문은 담장이 상당히 높고 둥그렇게 되어있어 외부의 침입을 막는데 상당히 유용할 것 같았다.

실제로 고려 말부터 침략해 온 왜구를 방어하기 위해 강진에 이 전라병영성을 옮겼다고 한다.


조선왕조는 국가체제를 정비하면서 고려의 군사적 유제를 청산하고 도별로 2~4개의 진을 설치하여 첨절제사가 부근의 병마를 통할하게 하는 영진체제를 마련하였다. 처음 영진체제하의 전라지역은 광산현에 병영이 설치되고, 4개의 진이 예하에 속해 있었다. 이러한 관계는 연해지역 왜구방어를 위해 수군진영들이 해안쪽으로 이동하면서 재정비 되었고, 마침내 육군과 수군의 합력에 의한 왜구 방어의 강화를 위해 전라병영이 강진으로 옮겨오면서 일단락되었다. 

전라병영성은 1894년 동학농민운동으로 함락되어 막대한 피해를 입었고, 이듬해인 1895년(고종 32) 복구되지 못하고 폐영되었다. 폐영 당시 1,889채의 가옥과 5,973명이 살고 있었으며《대동지지》《성지》에 따르면 석축의 둘레 2,820척, 높이 18척, 여첩 302개, 옹성 12개, 포루 2개, 호지 5개, 우물 9개가 있었다는 자료가 남아있다.

- 강진 관광안내책자 참조



하늘이 조금씩 꾸물텅해지기 시작.




불에 탄 듯이 보이는 부분은 옛 것을 그대로 이용한 것처럼 보인다. 요즘 복원 트렌드는 최대한 오리지날 재료를 사용하는 것이라 한다.





관광안내책자에 소개되어 있을 때는 으리으리한 병영을 떠올렸으나... 생각보다 더 쓸쓸한 부지였다. 설명되어 있는 대로 성터와 문만 복원을 완료한 듯 싶다. 강진이 관광사업으로 이것저것 많이 추진하느라 이쪽은 살짝 뒤처진 느낌? 전라병영성 내부에 있던 건물들을 복원한 다음, 민속촌처럼 시민들이 참여하는 프로그램 같은 걸 운영하면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넓은 부지를 놀리고 있는 것이 아깝달까... 몇 년 후에 다시 와보면 모습이 바뀌어 있을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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