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 경복궁 #5 궁궐 안의 궁, 건청궁
포스트를 완성하고 나서 날려먹는 바람에 새로 쓰는 포스트다.
원래 시험 공부도 시험 보고 나서는 다 휘발시키는 편인데 포스트에 무슨 말 썼는지 생각하려니 아주 죽을 맛이다
향원정에서 열심히 사진을 찍고 건청궁 쪽으로 갔다. 향원정 북쪽에 아주 가까이 위치해 있다.
건청궁(乾淸宮)은 고종과 왕비의 처소로, 경복궁 안에 지어진 또다른 궁이라고 볼 수 있다.
고종 10년에 아버지 흥선대원군의 정치적 간섭에서 벗어나, 직접 정치를 다스리겠다는 자립성을 보여주기 위한 일환으로 세워졌다고 한다.
고종은 정말 바빴을 거 같다. 왕가 적통 후손이 아니라고 태원전도 지어야 하지, 아빠 아들 혼자 잘할 수 있거든? 을 보여주기 위해서 건청궁도 지어야 하지. 그것도 왕실 사비로 몰래 지었다고 한다. 어이구 짠하다. 나중에 신하들한테 들켜서 엄청난 반발을 샀다고...
건청궁(乾淸宮)은 '하늘이 맑다' 라는 뜻이라고 한다. 왕의 처소인 장안당(長安堂)과 왕비의 처소인 곤녕합(坤寧閤)이 있다. 1909년 일제강점기 때 헐린 후에 이 자리에는 조선총독부 미술관이 세워지고, 해방 이후에는 민속박물관으로 쓰이다가 철거하여 2004년부터 복원을 시작하였다. 2007년에 일반에게 공개되기 시작했으니 나도 이 건물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건청궁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전기를 사용한 곳이기도 하다,
이 앞의 향원지에 있는 물을 냉각수로 사용하여 화력발전소 형태로, 건청궁 앞과 곤녕합 앞에 가로등을 세워서 불을 밝혔다고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일루미네이션 쑈쑈쑈! 돈이 정말 많이 들었고, 전기 자체도 그다지 안정적이지 못해서 자꾸 꺼졌다 켜졌다 했단다.
토마스 에디슨이 '동방의 신비한 국가에 내가 발명한 전등이 켜지다니 꿈만 같다' 라고 일기를 썼다고 한다. 고종이 근대화 문물을 들여오기 위해 노력한 흔적.
함광문(含光門). 이 문을 통해 곤녕합으로 들어갈 수 있다.
'빛을 머금고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라는 뜻으로, 덕을 갖춘 자가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지극한 경지를 일컫는 말이란다. 결국 이 곳에 빛(전기)가 들어서게 되었으니 정말 이름 따라 간다. 소오름.
오른쪽이 곤녕합이고 그 옆에 누마루인 옥호루(玉壺樓)가 붙어있다.
왕비의 처소이니만큼 그녀의 마지막도 이 곳이었다.
명성황후가 시해된 장소이다...
옥호루 코너를 돌면 붙어있는 같은 건물에 함께 붙어있는 사시향루(四時香樓). 사시사철 향이 끊기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문화재청이 그랬다. 여성적이고 아기자기한 느낌의 이름이다. 옥호루와 바로 붙어 있는데, 안쪽 구조가 어떻길래 누각 이름이 나눠지는지 궁금증이 인다.
곤녕합 동쪽 끝의 청휘문으로 나가면 자선당 기단과 주춧돌이 있다.
자선당은 왕세자와 세자비가 지내는 동궁의 생활공간을 말한다. (이 날 동궁을 둘러보지 아니함)
복궁의 많은 건물들은 일제시대에 철거되었고, 자선당을 비롯한 일부 건물들 은 일본인에게 팔려가기도 하였다. 자선당은 경복궁 철거에 앞장섰던 오쿠라가 빼돌려 자기 집 정원으로 옮긴 뒤 ‘조선 관’이라는 이름을 붙여 사설 박물관으로 사용했다.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이 건물은 불타 없어지고 기단과 주춧돌만 남은 자리에 오쿠라호텔이 들어섰다. 이 호텔 정원에 버려져 있던 돌들을 1993년에 김정동 교수가 발견하여 노력 끝에 다시 경복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화재로 인해 이미 상해 버린 돌들은 자선당 복원 때 쓰이지 못하고 건청궁 동편 녹산 한쪽에 놓여져 있다.
경복궁 가이드북 발췌
곤녕합에서 저 문을 지나면 관문각터가 나온다. (문 너머가 곤녕합)
건청궁의 구조는 사랑채인 자선당과 안채인 곤녕합이 따로 또 같이 있는 모습이다. 사랑채와 안채 사이에 담이 있긴 하지만 빙 둘러오면 담을 지나지 않고도 이어진다.
건청궁 전체 규모는 대략 250칸으로 상당히 크다. 규모는 2.5배지만 궁궐이라기보다는 양반집 대궐의 모습.
경복궁 제일 안쪽에, 비밀리에 지었다니 어쩐지 고종의 아지트 같은 느낌이다. 고종이 이 곳을 참 좋아했다던데... 왕이 아닌 평범한 양반집 사내로서 아내와 오손도손 지내고 싶은 마음이 묻어나왔는지도 모르겠다.
관문각(觀文各)은 내궁으로서는 최초로 서양식 양관의 모습을 한 건물이라고 한다. 러시아 건축가인 세레친 사바틴이 지었다. 일제강점기 시작 전에 지은 건물로, 관문각 뒤켠에는 시계탑도 있었다고 한다. 당시 근대 문물을 받아 들여 지은 건물이라는데 의의가 있다.
1890년대 쯤에 건설한 후 1900년대 초에 허물었기 때문에 북궐도형에는 이 관문각이 나타나 있지 않다. 존재가 알려지지 않아서 경복궁 복원 계획에서 제외되었고, 지금도 빈 공터로 남아있다. 건설 시기가 정확히 언제인지, 철거는 언제 되었는지, 내부구조는 어땠는지 자료가 남아 있지 않다. 보물을 보관하던 곳이라고도 하고, 왕의 서재였다고 하기도 하고, 외국 사신들의 접견실이었다고도 하고... 용도도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한러 수교 20주년 전시회 <다시 만나는 이웃 러시아>에서 공개된 사진
그동안 전체적인 사진은 공개된 적이 없고 건청궁 뒤켠에 3층 건물만 살짝 나온 사진들이 있었는데, 2010년에 전시회에서 관문각 사진이 몇 장 공개가 되었다고 한다. 그 전시회 다시 안해주나? ㅠㅠ 보러가고 싶다. 거기다 위 사진에서는 북쪽으로 연결되어 있는 취향교가 보인다. 향원정 보수 공사가 조금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관문각터에서 뒤로 돌아 담장을 따라 나가면 왕의 처소인 장안당이 보인다.
장안당의 누마루인 추수부용루(秋水芙蓉樓)이다. 곤녕합의 사시향루/옥호루와 한 세트를 이룬다고 볼 수 있겠다. 추수부용은 '가을 물 속의 연꽃' 으로 아주 아름다운 풍경을 의미한다고 한다.
장안당(長安堂)의 현판은 파란색으로 고종이 직접 쓴 어필로 되어 있다.
오래오래 평안하라는 뜻에서 지은 이름.
장안당 가운데에는 고종이 앉아서 업무를 보던 어좌가 있고, 양쪽에 일월오봉도가 있다.
역시 왕이 가는 곳은 어디든 따라가는 일월오봉도.
사진 속 그림 밑부분이 왜 찢어졌는지는 모르겠는데.... 복원한 그림이라도 잘 보존해줬으면 좋겠다.
따로 사진을 찍지는 않았는데, 장안당 앞 마당에는 고종시 품종의 감나무가 심어져있다.
고종이 좋아하던 감 품종으로 경상북도 산청군에서 기증한 것이라고 한다.
원래 모습이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마당은 상당히 단촐하게 꾸며져 있다.
건청궁은 딱히 기대하지 않고 들어간 장소인데 굉장히 볼 거리가 많은 곳이었다.
고종이 소중하게 여겼던 장소... 공을 들여 지은 것이 티가 난다.
장안당 앞편 담에는 필성문이 있는데, 이 문을 통해 집옥재 쪽으로 갈 수 있다.
사진을 찍지는 않았지만, 문이 벽돌로 되어 있고 월문 형식이라 상당히 귀여운 느낌이다.
필성문 위쪽에는 경복궁 북쪽 출입구인 계무문이 있다.
저 계무문 너머에 청와대가 있어서 경비를 서고 있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고 한다.
내가 이 사진을 찍었을 때는 닭이 살고 있어서 괜시리 재빨리 집옥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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