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공동경비구역JSA (Joint Security Area, 2000)
아주 오랜만에 영화 공동경비구역JSA를 재감상해보았다. JTBC 금토드라마 괴물에서 신하균 배우의 연기를 너무 감명깊게 본 나머지 그가 출연한 영화를 하나씩 들여다보기로 결심, 첫번째로 이 영화를 선택했다.
이 영화를 언제 보았더라? OTT 서비스가 세상에 나오기 훨씬 전에 보았으니 극장에서 봤나보다. 2000년이면 초등학생 때. 누구와 보러 갔는지(아마 부모님과 함께), 어쩌다 보러 갔는지(아마 그 당시 흥행 영화라서)는 기억이 나지 않아도 그 당시의 감상은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와~ 영화 재밌었다. 이 정도가 아닐까? 전쟁의 역사에도 무지하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로 북한 사람에게 적개심도 없었던 십대 초딩이 보기에 이 영화는 꽤나 이해하기 어려웠을 터다.
가끔씩 언급될 때 아, 그거 봤지. 라는 한 마디 말로 정의만 하던 영화. 때묻은(...) 어른이 된 후 다시금 플레이해보니 옛 기억과 달리 가슴 아픈 장면이 많아서 끝까지 보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자꾸만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느라고.
영화가 오래되기도 했고 워낙 인기작이라 보신 분들이 많을테니, 스포일러는 신경쓰지 않고 이야기해보겠다. 영화는 총 3부로 나눠져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Area
1부의 제목은 Area. 영화 제목의 단어를 거꾸로 재배치한 것처럼 1부에서는 작품 내의 클라이막스가 이미 끝난 후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다만 관객들은 사건의 진상을 조사하러 온 한국계 스위스인 소령 소피 장(이영애 분)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사건인즉슨, 남한 측 병사 이수혁 병장(이병헌 분)이 돌아올 수 없는 다리 너머 북한군 초소에서 조선인민군 전사[각주:1] 정우진(신하균 분)과 최 상위[각주:2] 총 2명을 사살하고, 오경필(송강호 분) 중사에게 총상을 입혔으며 그 자신도 부상을 입은 채 탈출하여 남한군 초소로 복귀한 건이다. 이미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이라는 점에서 관객들은 어렴풋이 이 영화가 비극적으로 끝나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이니만큼 남북한의 긴장감이 최대로 치닫게 되고, 중립국 감독위원회 소속인 소피 장이 조사원으로 파견되어 사건의 진상을 파헤친다. 남북한이 서로 다른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측에서는 큰일(...)을 보고 있던 이수혁 병장을 북한군 둘이 납치하였고, 이수혁 병장이 자력으로 탈출하는 과정에서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주장한다. 북측에서는 이수혁 병장이 갑자기 북한군 초소로 쳐 들어와 공격한 뒤 뛰쳐나갔다고 진술한다. 이거 다 거짓말 읍읍
최 상위는 2발을 맞아 사망, 정우진은 총 8발을 맞아 사망했다. (이 때 시체를 나름 정교하게 보여줘서 놀랐다는... 어릴 땐 뭔 정신으로 봤을까.) 오경필이 총알 1발을 맞아 부상당했으니 사용된 총알은 11발. 하지만 총 15발의 총알을 넣을 수 있는 총에는 5발의 총알이 남아있었다. 맞지 않는 총알의 개수에 주목한 소피 장은 이수혁을 추궁하고, 이 과정에서 현장에 또 다른 남한 병사 남성식 일병(김태우 분)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남성식 일병은 수사 과정에서 권총으로 자살을 시도하다 말을 듣지 않자 건물에서 투신한다.
아니 분명 간략하게 쓰려고 했는데 왜 이렇게 길어졌...
Security
2부 Security의 시작점에서는 판문점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들의 해프닝을 보여준다. 이 장면을 대체 왜 넣었는지 관객들이 어리둥절해 할 만한 장면이다. 그와 동시에 영화가 끝나고 나면 다시 한 번 더 확인하게 되는 서글픈 장면이기도 하다.
이후 영화는 등장인물들이 어떻게 가까워지는지 코믹하게 그려내지만 이미 1부를 지켜본 관객들은 웃으면서도 동시에 안타까운 감정을 느낄 수 밖에 없다. 끝까지 좋은 사이로, 좋은 추억으로 남을 수 있었지만 그 우정은 처음부터 잘못된 토대 위에 쌓여 결국 비극을 불러왔다. 아니, 애초에 분단이 되지 않았으면 형 동생 사이로 친하게 지내는 건 아무 문제 없을 일 아닌가. 말을 못 알아듣는 것도 아니고, 얼굴도 똑같이 생겼는데.
호주에 있었을 때 수업시간에 잠깐 북한 사람들의 인터뷰 영상을 볼 일이 있었는데, 말씨는 달라도 무슨 말을 하는지 전부 다 이해할 수 있어서 새삼스럽게 신기했던 경험도 떠올랐다. (그 때 선생님도 한국인 학생들에게 북한말 알아들을 수 있냐고 물어보셨었다. 심지어 이분은 중국인 학생들에게 천안문 사태 영상도 보여줬더랬다. 노빠꾸 선생님)
등장인물들은 화면 속에서 하하호호 꽁냥거리고 있건만, 영화를 감상하는 나만 별 생각이 다 드는 거다. 그래서 자꾸만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게 된다. 이미 알고 있는 그 결말이 언제쯤 펼쳐질지 두려워서... 서로에게 총을 쏘아야만 했던 그 순간을 최대한 미루고 싶어서.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비단 영화 속에서만 통용되는 질문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적용할 수 있는 질문이다. 어쩌다 75년이 넘는 세월동안 한반도는 반으로 갈라져 지금까지도 세계 유일의 분단 국가로 남아있게 된 것일까.
최민식 배우는 이 닭싸움 장면을 보면서 눈물을 펑펑 쏟았다고 한다. 그 얘기를 듣고 나서인지 나도 눈물 찔끔. 그저 노는 게 좋았던 아이들 같아서 슬펐다. 또 또 쟤네는 즐거운데 나만 글썽이네.
Joint
영화의 최고 클라이막스 부분. 오경필과 이수혁의 대질심문 도중 이수혁은 평정심을 잃고, 오경필은 그를 때리고 욕하다 퇴장한다. 소피 장은 사건의 진상에 거의 근접해가지만, 아버지가 인민군 출신이라는 이유 때문에 사건에서 손을 떼게 된다. 그리고 밝혀지는 진실...
"자네는 아직 판문점을 몰라. 진실을 감춤으로써 평화가 유지되는 곳. 남북이 원하는 건 각자의 주장이 끝나면 사건이 흐지부지 되는 거야."
실제로 1998년에 김훈 중위 사건 때 남북한 경비병이 접촉한 사실이 군 수사당국에 의해 밝혀졌다고 한다. 영화의 원작 소설 <DMZ>가 발간된 후 1년 뒤의 일이다. 술과 담배, 연락처를 교환하는 등 정말 영화같은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영원히 알려질 일 없을 그들의 대화는 어땠을까 한 번 상상해본다. 분단 국가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니, 똑같은 감정이지 않았을까? 전세계 통틀어 한반도의 통일을 원하는 사람은 오로지 우리나라 사람과 북한 사람뿐이라고 하던, 언젠가 인터넷에서 보았던 글이 떠오른다.
신하균 배우 보려고 튼 영화였건만 보다 보니 진심이 되어버려서 글이 엄청 길어졌다. 영화 시작하자마자 죽어있는 배역인데다가 비중도 조연이지만 만 26세, 그의 애띤 얼굴은 귀엽...ㄷ...ㅏ (40대 배우의 20년 전 보면서 귀여워하기) 정우진 캐릭터가 넷 중 막내에 성격도 꾸러기라서 더 귀여움. 그래서 총알 8발이나 맞고 죽었다는 게 더 짠해지는... 흑흑... 왜 그렇게 밝게 웃는기야... 더 슬프게시리.
송강호 배우도 엄청 젊다. 그가 만 33살일 때의 모습. 지금은 너무나 대배우이지만 이 당시에는 이병헌에 비해 조금 티켓파워가 딸리지 않느냐는 평을 들었다고 한다. 20년 후의 그는 지금 날아다니고 있으요. 그러고보니 올해 개봉할 <비상선언>에서 이병헌 배우와 또 만난다고. 아참, 탈북민이 말하기를 송강호 배우가 구사하는 북한 사투리가 배우들 중에서는 가장 현지인과 흡사하다고 한다.
이병헌 배우는(...). 이 땐 참 바른생활 사나이처럼 보였건만 세월이 아쉽고나.
2015년에 한번 재개봉을 하고, 지난 3월 말에 재재개봉을 했다는 걸 알고 다시 한 번 큰 스크린으로 보았으면 참 좋았을 걸 후회했다. 이미 본 영화라고 가벼운 마음으로 틀었다가 이렇게 여운이 남을 줄이야. 확실히 명작은 명작. 머리가 좀 자란 뒤 보는 게 더 좋은 영화같다. 나처럼 어렸을 때 한 번 보고 말았다면 다시 보는 것을 추천!
+) 여담으로 마이너의 대가이신 박찬욱 감독은 이 작품을 남북한 병사들 간의 찐한 브로맨스로 다뤄보고 싶어했단다. 심지어 생각해둔 결말도 완전히 달랐다고. 그 얘길 떠올리면서 영화를 보면 병사들 간의 감정선이 각각 어디로 향하는지(?) 보일듯 말듯하여 색다르게 감상할 수 있다. 설정은 마이너하지만 나는 좋아했을듯..... 아 근데 그럼 2000년엔 너무 진보적이라 개봉을 못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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