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 일곱 후궁들을 모셔놓은 궁정동의 숨겨진 사당, 칠궁(七宮)

청와대 관람을 끝마치고 나면 선택한 사람에 한해서 칠궁(七宮)이라는 곳을 방문할 수 있다. 종로에 있는 문화재를 둘러보는 것을 좋아하는 나인지라, 이 옵션이 있다는 것을 알고 대체 어떤 곳일까 궁금증이 마구 솟았다. 


칠궁(七宮)은 이름에서부터 일곱 개의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바로 왕을 낳았으나 정비가 아니기에 종묘에 신위를 모시지 못한 일곱 여인들이 그 주인공이다. 칠궁은 이 일곱 분들의 신위를 모셔놓은 사당이다.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인물도 있는 반면에 잘 모르는 사람도 있다.




칠궁의 역사는 영조로부터 시작되었다(그의 혈통 콤플렉스를 생각해보면 놀랍지 않다). 드라마 동이로 제작된 적도 있는 숙빈 최씨. 영조는 종묘에 모실 수 없는 그의 어머니를 이 곳 경복궁 바로 옆에 모시고 싶어했다. 처음에는 이 곳을 숙빈묘라고 칭하다가 육상궁(毓祥宮)이라는 이름으로 고쳤다. 그 후 고종 19년에 불에 탄 이 곳을 재건축하고, 융희 2년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후궁들의 위패를 합사하여 총 일곱 분을 모시게 되면서 칠궁이 되었다고 한다.


본디 이 곳의 위치는 경복궁 후원이었는데 청와대가 들어서면서 도로가 나뉘게 되었다고 한다. 아직까지 전주 이씨 가문이 이 곳에서 제사를 지내고 있기 때문에 일반인들에게 공개는 되지 않고 청와대 관람객들에게만 선택적으로 공개한다.




칠궁의 정문에 들어서면 왼쪽에 송죽재, 오른쪽에 풍월헌이라는 재실이 있다. 이 안에는 어진이 모셔져 있다고 하는데, 사실 구경하느라 정신을 팔고 있어서 정확히 기억은 안난다. :D 옆 건물은 방금 다녀왔던 청와대 영빈관. 이 쪽으로는 사진을 찍을 수 없다.




재실 앞에는 이렇게 돌로 된 계단, 하마석(下馬石)이 있다. 말을 타고 온 사람은 이 앞에 멈춰서서 내리라는 표식이다. 비록 왕이라고 할 지라도, 칠궁에서 모시고 있는 분들은 왕을 낳은 어머니시기 때문에 높이 공경을 표해야 한다는 의미다.




재실을 지나 해설사님을 따라가면서 숙빈 최씨를 모신 육상궁 사당을 향해 이동했다. 궁궐마냥 아주 넓지는 않지만 그래도 좁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육상궁으로 들어가는 내삼문이다. 가운데 지붕이 높은 문이 가장 지체가 높은 사람이 드나드는 문으로, 본디 왕이 지나가는 자리이나 칠궁에서는 왕의 어머니들의 혼백이 들어오실 수 있도록 비워둔다. 




내삼문을 들어서면 연호궁(延祜宮)이 나온다. 응? 육상궁을 향해 가는 것 아니었어? 웬 연호궁?

연호궁은 영조의 어머니인 숙빈 최씨가 아니라 영조의 후궁이자 효장세자의 생모인 정빈 이씨를 모셔놓은 곳이다. 




짜잔~ 바로 뒤에 육상묘라고 쓰여있는 현판을 볼 수 있다. 한 건물처럼 보이지만 사실 두 분을 모시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두 분은 무려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라는 것! 해설사분께서 뒤 쪽의 현판은 고종이 썼다고 알려주셨다.




연호궁 건너에 보이는 초가정자. 




계단의 개수나 기둥의 모양도 누구를 모시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한다.




육상궁을 지을 때 발견된 샘인 냉천(위)과 그 물이 흘러서 만들어진 연못 자연紫淵(아래).




영조의 어진을 보관했다는 냉천정. 현판의 귀여운 글씨는 순조의 글씨로 추정된다고 한다.




또 다른 내삼문을 들어서면 나머지 다섯 분을 모셔놓은 사당을 볼 수 있다.




제일 처음에 보이는 사당은 덕안궁(德安宮)으로, 고종의 후궁이자 영친왕의 어머니셨던 순헌황귀비 엄씨의 사당이다. 아름다운 용모는 아니었으나 굉장히 박식하여 고종의 총애를 받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가장 왼쪽에는 선조의 후궁이자 원종(추존왕)의 생모인 인빈 김씨를 모시고 있는 저경궁(儲慶宮), 가운데에는 숙종의 후궁이자 경종의 어머니인 희빈 장씨를 모시고 있는 대빈궁(大嬪宮)이 있다. 




대빈(大嬪)은 '크고 높은 후궁'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역시 실록에 얼굴이 아름답다고 쓰여진 장희빈답다. 또한 이 대빈궁은 양 옆의 다른 사당들보다 계단이 한 칸 높고 기둥이 각지지 않고 동그랗다. 이 주변에 있는 다른 분들보다 위계가 높아서 그렇다나? 아마 아드님이 경종이라 차별화를 뒀다고 들었던 것 같다. (다른 분들은 대부분 추존왕의 어머니시다)




오른쪽 건물에는 경우궁(景祐宮)이라고 쓰여있는데, 정조의 후궁이며 순조의 생모인 수빈 박씨의 사당이다. 응? 이러면 칠궁이 아니라 육궁이잖아? 싶겠지만 이 곳에는 영조의 후궁이며 사도세자의 생모인 영빈 이씨를 모신 선희궁(宣禧宮)도 함께 있다. 이쯤 되니 칠궁에 영조 관련 인물이 아주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엄마 둘(숙빈 최씨, 희빈 장씨), 부인 둘(효장세자 생모, 사도세자 생모), 그리고 손주 며느리까지. 




같은 여자였고, 똑같이 아이를 낳아 그 아이가 왕이 되었는데 종묘에 있지 못하고 이렇게 별도의 장소를 만들어야 하다니 어쩐지 서글프기도 했다.




바닥에 있는 것은 우물이 아니라 지전을 태우는 장소라고 한다.




문화재, 특히 고궁을 즐겨 관람하는 나로서는 아주 뜻깊은 시간이었다. 청와대에서 걸어서 10분도 걸리지 않고, 전체 관람시간이 약 30분 정도 되니 청와대 관람을 끝내신 분들께 꼭 칠궁을 선택 관람하시기를 추천드린다.





+) 추가글

2018년 6월부터 일반 관람객들에게 개방되었다. 경복궁 공식 웹사이트에서 신청할 수 있다. (예약 필수/무료)

홈페이지 | http://www.royalpalace.go.kr/content/guide/guide32.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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