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 :: 서원리 마을 이름에 담긴 역사, 우리나라 두 번째 사액서원 상현서원 이야기
서원계곡 하류에서 삼가천을 따라 쭉 올라가다보면 왼쪽에 사당처럼 보이는 자그마한 건물이 눈에 띈다. 처음에는 내비게이션 찍고 가다가 못 보고 지나쳐버림 ㅋㅋ. 저번 포스팅에 쓴 대로 따로 서원리 소나무를 보러 다녀온 다음 같이 올릴까 했는데, 생각보다 사진 나누기가 힘들어서 그냥 상현서원 단독으로 올려보기로 했다.
상현서원은 조선시대의 문신인 김정(金淨)을 기리기 위해 당시 보은현감이던 성제원이 1555년에 삼년산성 안에 건립한 서원이다. 1610년에 전국 두번째로 국가공인 사액을 받았고 초기의 이름은 삼년성서원이었다고 한다. 이후 1672년 지금의 서원리 자리에 옮겨지면서 성운, 성제원, 조헌, 송시열을 추가로 배향하고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인해 1871년에 폐쇄되었다고 한다. 그 후 복원을 거쳤으나 아무래도 좀 미비한 감이 있는듯... 상현서원에서 사용하던 강당은 현재 보은향교로 옮겨졌다고 한다. (나중에 가봐야지.)
본디 서원은 유림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교육을 하던 기관이라 국가의 관여가 필요 없지만, 서원의 향사적(제사적)기능과 후학양성의 가치를 높게 삼은 서원은 국가에서 특별히 현판과 서적, 노비 등을 하사받아 명성이 높았다고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은 바로 그 유명한 영주의 소수서원이다. 조선 후기에는 사액서원이 남발되기도 하였지만 전기에는 꽤나 까다롭게 정했다고 한다. 상현서원은 충북 최초의 서원이자 우리나라 두번째인 사액서원.
그런 으리으리한 타이틀이 있지만... 한번 폐쇄되었어서 그런지 현재의 규모는 매우 아담했다.
(좀 더 볼거리를 구비해두면 좋지 않을까 싶었다.)
정문으로 들어가려다 역시나 또 잠겨있길래(ㅠㅠ) 옆 쪽 담장으로 가보았다.
대문채 바로 앞에 비석이 하나 세워져 있으며 묘정비각이라고 한다.
내문 일각 뒷쪽에는 상현사라고 쓰여져 있는 맞배지붕 모양의 사우가 있다.
사진... 이게 다인가 싶어서 정면 사진도 찍을 겸 길 건너 삼가천을 구경하러 감.
아래쪽으로 내려갈 수 있게 정비를 잘 해뒀다.
저 건너 무슨 건물이 있길래 봤더니 화장실이었음. ㅋㅋㅋ 좀 특이한 곳에 지어뒀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사람이 없어서 오히려 좋아~
떠나기 아쉬워서 다시 한 번 사진을 찍었다.
문 앞 부지는 말끔하게 정리해두어서 관리하고 있다는 느낌~
담장 밖에서라도 찍어보자! 하고 들이댄 사진... 그런데
대문의 이 끈... 풀어도 되겠는데?
냅다 열고 들어가보았다. ㅋㅋ
상현서원묘정비는 한자로 쓰여있으며 세월이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내문과 사우 사이에는 별도의 담장이 또 있다! 요건 좀 신기한 구조로군.
안타깝게도 내부터는 자물쇠로 잠겨있어 더 들어갈 수는 없었다.
이걸 또 계속 열어뒀다가는 아무나 들어가서 문화재를 더럽힐 수도 있으니 그래도 잠궈두는게 맞는 것 같다.
이곳은 나름 관광객들도 많이 오는 곳이고 말이지.
상현사라고 쓰여있는 사우에는 김정의 위패를 중심으로 양옆에 성운, 성제원, 조헌, 송시열의 위패를 모셔두었다고 한다. 매년 2월과 8월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고 하니 내부를 보려면 그 때 구경 오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김정은 조선시대 전기 문신으로 호는 충암, 고봉이다. 고봉이라는 말이 익숙해서 찾아보니 보은에 있는 고봉정사가 김정과 관련이 있더라. 아니나 다를까 보은이 그의 고향이었다. 순창군수로 재임하던 시절 연산군 폐비 신씨의 복위를 주장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유배를 오기도 했다고. 이후 도승지, 이조참판, 대사헌 등 다양한 벼슬을 지내다 기묘사화로 인해 제주도로 또 유배를 가고 신사무옥에 연루되어 사약을 받았다.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니 어쩐지 할 말 다 하는 성품에 대쪽같은 인물이지 않았을까 추측해봄. (사후에 영의정으로 추증)
추가로 위패를 모셔둔 분들에 대해 검색해보니 성운(호 대곡)은 처가인 속리산에 머물던 당시 뛰어난 학자로 명망이 높았으나 벼슬을 마다했던 사람으로, 성족리에 묘소가 있다. 성제원(호 동주)은 위에 언급한 상현서원을 최초 건립했던 보은현감으로 당시 백성들에게 덕망이 높은 사람이었다고 한다.
성운과 성제원 둘 다 창녕 성씨고 동시대 사람인데 이상하게 창녕 성씨 온라인 족보에는 성운이 나오질 않는다. (선조라고 표기되어 있긴 하지만.)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나? 싶었는데 좀 더 찾아보니 성제원이 보은현감을 지낼 때 성운을 자주 만나 학문을 논했다고 한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당대의 학자들이 보은에 많이 찾아오게 되었고 그 중 김해에 살던 조식(호 남명)이라는 학자가 찾아와 셋이 우정을 나눴다고.
이 때 보은에 모여든 학자들이 토론하던 곳이 바로 고봉정사이다. (요기는 2시간 후에 찾아갔음~)
조헌은 율곡 이이의 제자로. 보은현감을 지냈으며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이끌고 싸우다 전사하신 분이다. 호가 후율인데, 옥천과 보은에 이 분을 기리기 위한 후율당과 후율사가 있다. 우암 송시열 선생은 외가가 옥천이라 그 곳에서 태어나셨고 속리산 화양동에서 자주 머무셨다고 하는데, 사실 보은하고는 크게 관련은 없지만 이상하게도 보은 곳곳의 사당이며 정사, 서원에서 송시열 선생의 친필로 써진 편액이 많다. 아마 속리산 전체가 그 분의 구역이지 않았을까 싶다. ㅋㅋㅋㅋ
푸른 산과 공기 좋은 계곡 앞, 당대의 명망 높은 학자들을 모시기에 부족함이 없는 장소같다. 충청북도 최초의 서원이자 소수서원 다음으로 사액된 서원이니 분명 건립 당시에는 교육시설로 꽤 큰 곳이었을 것 같다는 상상이 든다.
작고 조용하지만 상현서원은 여전히 서원리라는 마을 이름에 깊이 새겨진 역사와 가치를 보여주는 곳이었다. 계곡을 따라 오르다 잠시 들러보기 좋은, 숨은 역사 명소랄까. 보은 여행길이라면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서 옛 선현들의 숨결을 느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향사 시기에 방문해서 내부도 볼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지만서도...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상현서원 근처에는 1990년대에 아주 많은 사람들이 고시 공부를 하러 왔었던 제일고시원이라는 건물이 있다. (지금은 아마 운영을 안하시는 것 같은데... 2023년까지는 홍보글이 올라와 있음) 상현서원에 모셔진 많은 현인들의 기상과 속리산과 서원계곡의 청량한 기운을 쏙쏙 흡수하여 원하시는 바를 이루셨기를.
다리 건너 보였던 화장실을 찾아 올라와 보았다. 마침 화장실을 가고 싶었기 때문이지.
(서원계곡 화장실은 별로였다구~ ㅠㅠ)
충북 알프스 종주가 시작하는 곳이 이 곳에 있다! 이곳을 들머리라고 하나보다. (들어가는 입구) 구병산까지 간 후에 산외면 쪽으로 나오는 코스. 구병산 풍경도 아주 멋있다던데....
내가 등산에 취미가 있다면 좋겠지만 거지같은 체력을 가지고 있다보니... 3시간 정도 등산하는 건 어찌어찌 해도 종주는 좀 무리다. ㅋㅋㅋㅋ 친구가 꼬셔준다면 갈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먼 훗날의 계획으로 남겨둬야겠다.
화장실 세면대에 꼬마 개구리들이 있어서 찍어봤다. ㅋㅋㅋ
(비록 개구리가 있어도 화장실 자체는 깔끔하고 휴지도 있고 냄새도 안났다는~)
아참참, 지금 충청북도에서 숙박시설 할인쿠폰을 제공하고 있으니(대한민국 숙박페스타의 일환인듯) 관심있으신 분들은 살펴봐도 좋을 것 같다. 소식을 늦게 접해서 기한이 얼마 안 남았다... 7월 7일까지 발급가능하고 입실은 8월 22일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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