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배우들의 연기만 남았던 애매한 영화, 마약왕(THE DRUG KING)
배우들의 연기만 남았던 애매한 영화, 마약왕(THE DRUG KING)
토일요일 포함해서 연속 4일을 쉬게 되니, 이왕 시내에 나온 김에 영화를 두 편 볼까 생각했다. 그런데 찜해두었던 영화 마약왕이 영 평이 좋지 않아서 볼까 말까 정말 고민을 많이 했다. 보러갔던 토요일에는 박스오피스 1위이긴 했지만. 실관람자들의 혹평 때문에 정말 진짜로 무지막지하게 고민을 했는데 결국 할 일은 별로 없고 집에 바로 가기는 아쉬워서 보기로 했다. 감독이 내부자들 감독이라고 하니까 그래도 기본은 하겠지. 실화 기반이라고 하니까 뭔가 스펙타클하지 않겠어? 마침 무료 영화 티켓도 하나 있었고 말이다.
CGV는 시간대가 너무 늦길래 이번에는 롯데시네마.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성안길에는 CGV가 2곳, 롯데시네마가 하나, 각각 도보 5분 거리에 있기 때문이다. 메가박스 왜 없어ㅠㅠ
한 장은 쿠폰으로 무료 관람, 한 장은 8500원에 결제했다.
저번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러왔을 때는 전광판이 망가져 있었는데 오늘은 다행히 멀쩡했다.
때는 유신정권 치하, 부산에서 부인, 세 여동생+사촌동생과 함께 살고 있는 이두삼은 돈을 많이 벌고 싶어하지만 가지고 있는 능력이 대단하지는 않다. 초반부터 조폭 밑에서 밀수 일을 하고, 조폭 따까리에게도 발리는 구질구질한 면모를 보여주기 때문에 몰입이 잘 되지 않았다. (하긴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있는 대부분의 관객은 선량한 일반인이니 당연히 몰입이 안되겠지.) 어쨌든 이두삼은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마약 운반일을 하다가 여차저차하여 본인이 직접 마약을 만들어내는 생산자가 되고 그 과정에서 사업가적 면모를 발휘하여 큰 돈을 벌게 된다.
마약을 직접 생산해내려고 하는, 본격적인 전개로 들어가기도 전에 영화를 보면서 내가 가장 간절히 생각했던 것은...
바로 자막이었다. 나는 진심으로 한국영화에도 자막이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 영화는 부산이 배경이라서 영화 중반부터 나오는 조정석, 배두나 그 외 정부 관련 인사들을 제외하고는 전부 다 부산 사투리로 대화를 하는데 진심 모든 대화의 80%를 못 알아들었다. 그냥 눈치로 대충 이해하고 영상으로 보여주니까 아, 이런 내용이구나 싶지. 뭐라고 말했는지 정확한 워딩이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렇게까지 사투리 네이티브라니ㅠㅠ
물론 내가 평소에 귀가 어두워서 좀 못 알아먹기는 하지만 그래도 내부자들 관람할 때 조승우 사투리는 다 알아들었는데...
김인구 역, 조정석 배우가 나온다는 사실을 모르고 봤기 때문에 등장했을 때 약간 놀랐다. 서울에 있다가 부산으로 내려와서 마약 패거리를 소탕하려는 열혈 검사(?)다. 이두삼이 만든 마약의 본거지를 추적하려고 이리 저리 노력하는, 어떻게 보면 정의의 편인데 왜인지 내 편 같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자꾸 빨갱빨갱거려서) 그래서인지 딱히 응원하고픈 마음이 들지 않았다. 주인공 이두삼의 숙적이라기에는 뭔가 조금 부족하다는 느낌. 후반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는 한다.
배두나 배우가 맡은 김정아라는 역할은 의상실을 운영하면서 정계에 다리를 놔주는 로비스트다. 이두삼이 연회에 참석했다가 처음 그녀의 존재를 알게 되고 자신의 사업을 더 불리고 싶은 마음에 접근을 하게 된다. 김정아는 초반에는 이두삼의 속셈이 너무 뻔하니까 받아주지 않다가 스포츠카를 타고 몇 번 만나더니 금방 여러 권력자들을 소개해주고 이두삼은 쑥쑥 큰다. 지금 쓰면서 생각해보니 그 스포츠카 장면 정말 의미가 있긴 한건가 싶다. 영화 내내 예쁜 옷들을 입고 나와서 보기에는 좋았는데...... 역시 존재감이 그렇게 강하지는 않다. 애초에 비중이 적다. 영화 중반 이후부터 나오니까. 배두나 배우 좋아하는데 너무 아쉬웠다. 마지막에 어떻게 되었는지는 좀 알려주지...
이 영화에는 얼굴만 보면 "어, 저 배우?" 싶은 유명 배우들이 많이 나온다.
우선 이 영화는 단점이 많으므로 단점부터 설명하겠다. 내부자들 흥행 때문인지 감독이 한국의 근·현대사회를 비판하는 걸 좋아하는건지. 당시 혼란한 시대상을 반영하면서 물질만능주의와 권력에 찌든 부패된 인간상을 그리려고 한 것 같은데, 일단 캐스팅부터가 에러다. 주인공으로 송강호를 캐스팅했기 때문이다.
송강호, 하면 우리나라 국민들이 호감도 1위로 꼽는 명배우. 택시운전사와 변호인으로 천만영화를 찍은 배우. 그냥 가만히 있어도 공감이 되고 짠하고 눈물이 나는, 소시민을 대표하는 배우인데 정말 인간 쓰레기를 연기한다. 관객들은 도무지 주인공에 이입을 할 수가 없다. 아니, 중반까지는 짠하고 동정이 가는 불쌍한 모먼트가 있기 때문에 이입을 하다가 클라이막스에 가서는 "뭐야... 정말 진퉁 쓰레기였잖아?" 하고 뛰쳐나오게 만든다. 거기다가 온갖 연기 잘하는 조연배우들이 나오는데 다들 분량이 너무 적다. 이성민, 유재명, 이희준, 김대명, 조우진을 정말 지나가는 배경 1로 쓴다. 심지어는 함께 주연에 이름 올린 조정석, 배두나 배우의 비중도 그렇게 높지 않다. 송강호 배우가 잘못한 건 아닌데 그분의 존재감이 너무 강하다. 하긴 영화 자체부터 이두삼 일대기를 다룬 거니까. (왜 우리가 영웅이 아니라 마약왕의 일대기를 봐야하는지는 차치하고서라도...)
그로 인해 감독의 의도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한국 사회를 비판하려고 한 것 같긴 한데... 주인공이 잘 되기를 응원하자니 별별 불법과 적폐짓은 다하고 주인공과 대립하는 사람들을 응원하자니 정(?)이 안가고. 약간 처음부터 포커스를 잘못 잡은 것 같다고나 할까. 한 인간이 쓰레기가 되었다가 파멸하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라서 더더욱 감동(...)이 없다. 더 슬픈 건 코믹한 장면도 없다... 성적으로 노골적인 장면이 적은 편이기는 하다. 그런데 나 이 영화 토요일에 봤건만 결말 어떻게 끝났는지 벌써 가물가물해.
장점을 굳이 꼽자면 유신 시대를 비판하려고 한 노력이 좀 보인다는 점? 너무 돌려까서 느낌이 안 살기는 하지만. 아주 살~짝 윤종빈 감독의 범죄와의 전쟁 느낌이 나는 것 같기도?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가 정말 끝내준다. 특히 송강호 배우의 약 빤(...) 연기는 대단하다. 조연 배우들도 나오는 모든 장면에 필사의 연기를 펼쳐주고 있다. 그래서 연기만 남았다는 인상. 위의 단점에서 송강호 배우 캐스팅이 에러라고 했지만 사실 난 송강호 배우의 연기를 보려고 이 영화를 관람했고 나같은 관객들 많을 것이다ㅋㅋㅋ 장점이 단점이고 단점이 장점이네.
크리스마스에 보기에는 너무 무거운 분위기인데, 연말 시즌이라 관객은 꽤 들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평점은 낮음. 어떤 분들은 내 인생 최악의 영화라며 촌철살인을 하시더라. 나는 그 정도까지의 혹평은 아니지만 영화 보는 2시간 내내 힘들기는 했다. 정말 추천하기 조심스럽고... 영화적 재미가 아닌 배우들의 연기에 집중하고 싶다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연기 공부용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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