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 :: 11월, 울긋불긋 물든 법주사와 속리산 세조길을 거닐다


11월 초의 주말. 강릉에 살고 계신 작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우리를 보러 와주셨다. 강릉에서 이 곳까지 오는 게 쉽지 않은데 먼 길을 와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었다. 하루 주무시지도 않고 바로 가신단다. 우선 집에서 식사를 하고, 오후 3시 쯤 느긋하게 동네 뒷산으로 단풍 구경을 하러 갔다.




동네 뒷산은 속리산이다(...). 한국팔경 중 하나로 남한에서 38번째로 높은 산. 올해 단풍은 못 볼 줄 알았는데 또 어떻게 이렇게 나와서 구경하게 되었다.




속리산 국립공원에 들어가기 전 오리숲길부터 노란, 주황, 빨강으로 물든 단풍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무들이 입은 다홍 치맛자락의 화사함.




국립공원 입장료를 내고 들어와 속리산 세조길 자연관찰로로 진입했다(엄밀히 말하면 진짜 세조길은 아니다. 이전부터 있던 진입로). 법주사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필수 코스이다. 법주사까지 도보로 대략 20분.




공기는 서늘하고, 나무 위 하늘을 단풍이 잔뜩 메운 모습에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고 느꼈다. 호주의 11월은 거의 한 여름이라 가을을 느낄 수 없는 시기. 또 그 나라에는 단풍 나무가 별로 없어서 8년 동안 살면서도 '가을'을 느꼈던 적은 별로 없었다. 애기손같은 단풍잎을 보아야 가을이 왔다고 느낄 수 있는 건 역시 한국 사람이라서인가?




호서제일가람 법주사로 들어서는 일주문. 법주사의 규모가 속리산 안 쪽까지 가득할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컸다고 한다. 신라시대로 타임워프를 한다면 보러가고 싶달까.




이 쪽이 세조길이다. 1년 전 등산길에서는 내려올 때 구경했었다. 세조가 속리산으로 요양을 왔을 때 이 길을 지나갔다고 하여 세조길. 이 길의 끝에 몸에 난 종기를 낫게 해줬다는 목욕소가 있다. 그 목욕소까지 가려면 약 1시간은 걸어야 한다.




우리 동네 뒷산도 나름 나쁘지 않네, 생각하면서 산책을 하고 있는데 그 와중에 들리는 강릉 숙모의 목소리. "바다가 없으니 영 시원찮다 그치?"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에 작은 아버지도 강릉보다 못하다며 타박을 놓기 시작하셨다. "올림픽 할 때 꼭 강릉 놀러와~" 음... 아니요... 그것은 무리입니다. 평창과 강릉 숙소 1박이 50만원을 넘고 있어요.... 내년 봄 쯤에 갈게요.




상수도소류지 양 옆으로 세조길이 조성되어 있다. 걸어가면서 잠깐 동안 물을 볼 수 있다. 중간에 잠시 쉬어가며 포토 타임을 가질 수 있는 공간도 있다.




물가에 몰려든 작은 물고기 떼들이 소란스럽다.




상수도소류지까지 봤으면 이제 대부분 본 거 아닌가? 돌아가려고 했는데 자꾸 발걸음을 산으로 옮기시는 어르신들. 삼촌! 보은 별로라면서요. 강릉이 더 예쁘다면서요! (이제 그만 보고 집에 가죠 우리) 엄마를 필두로 꿋꿋하게 안으로 들어가셨다.




작은 아버지는 키가 크시다. 192cm. 내가 호주 가기 전에도 따로 뵙지 못했기 때문에 거의 15년만에 뵈었다. 날 보더니 처음으로 하시는 말씀. "너 키가 몇이니?" 

나보고 우리 집안 사람이 아니란다. 키가 너무 작다고ㅠㅠ 숙모는 내 옆에서 키가 커봤자 싱겁기만 하다고 핀잔을 주셨다. 음 그 말씀은 좀 부르주아 같은 발언이네요. 저는 그래도 키가 컸으면 합니다.




세조길이 끝나갈 무렵 만난 다람쥐. 속리산에 올 때마다 꼭 한 번씩은 보게 되는 것 같다. 이 녀석은 유달리 얌전해서 사진을 아주 여러 장 찍을 수 있었다. 뽀얀 흰 털 위의 귀여운 줄무늬. 이런 줄무늬가 있는 종류의 다람쥐는 스쿼럴(squirrel)이 아닌 칩멍크(chipmunk)라고 불리는데, 그 중에서도 한국 다람쥐(시베리아 다람쥐)는 북아메리카 이외의 지역에 사는 유일한 다람쥐라고 한다. 유럽의 숲에서는 이런 귀여운 줄무늬 다람쥐는 아예 찾아 볼 수가 없다지만, 우리나라 산천에는 널리고 널린 것이 요 녀석! 귀엽게 생긴 외견 때문에 애완동물로 해외수출되기도 했단다.




산공기를 마시니 확실히 맑고 깨끗하여 좋았다. 11월 초, 오후 4시 선선하고 나른한 산길.




세조길 탐방 끝! 다리 옆이 목욕소이다. 조금만 더 가면 세심정이 있다고 엄마가 꼬드겼으나 우리는 못들은 척 했다.




(아... 온 만큼 또 가야해 흑흑)




이번에는 반대편 길로 내려가면서 상수도소류지 너머의 길(아까 이용했던 길)을 찍어보았다. 단풍을 따라 가을빛에 흠뻑 젖은 물길.




산책을 끝내며 법주사를 들어갔다. 법주사는 입장료가 따로 없다. 물론 법주사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속리산 국립공원 입장료를 내야 하지만 말이다.




울긋불긋 단풍잎으로 꾸미신 부처님. 자주 왔지만 요런 모습은 또 처음 뵙는 느낌.




토요일 오후 단란한 가족들의 모습이 눈에 가득 담겼다. 




가족 사진도 몇 장 찍어드리고 (이 와중에 사진 못 찍는다고 호적 메이트한테 구박받음. 참나) 작은 아버지는 법주사는 약 30년만에 다시 오는 거라고 하셨다.




부처님을 다시 한 번 뵙고 가을 산책 마무리. (하지만 차를 주차해 놓은 곳까지 가려면 또 30분을 걸어야 한다!!!)



예전에 리뷰를 한 적 있었던 로터스 블러썸 카페에서 가족 간의 단란한 수다시간. 삼촌과 숙모는 역시나 강릉 사람답게 커피를 주문. 우리 가족은 나빼고 다 카페인 싫다며 차를 주문. 카야잼 토스트와 함께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시덥잖은 이야기를 했다. 십여년이 넘는 세월을 지나 오랜만에 만났지만 어색함이 없는 대화. 가족이라는 건 참 신기하다고 8년간 가족과 떨어져 살았던 불쌍한(...) 영혼이 외쳤다.


저녁 6시가 다 되서야 삼촌과 숙모는 강릉으로 떠나셨다. 다 큰 조카들 강릉에 찾아올 교통비라며 용돈까지 주고 가셨다. 감사하고, 또 뵙고 싶으니까 내년 봄에는 꼭 강릉에 다녀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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