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 :: 영랑생가 옆 시문학파 기념관에서 만나는 9명의 시인
지난 글 : 2017/11/08 - [발자취 足跡/한국 大韓民國] - 강진 :: 저항 시인 김윤식의 시가 피어나는 영랑생가
영랑생가 바로 앞에는 김영랑을 비롯하여 「시문학」 잡지에서 활동했던 9인의 시인을 기리는 기념관이 있다. 도보로 1분도 안 걸리는 아주 가까운 위치.
기념관으로 들어오는 입구에 동판으로 시문학파 9인의 초상을 장식해 놓았다. 다만 9인 중 허보의 얼굴은 알려지지 않아 책으로 대체.
강진에서 이런 기념관, 박물관을 여러 곳 방문했는데 그 이유는 일단 에어컨 때문이다. ㅋㅋㅋㅋㅋ. 7월 말의 강진은 정말 덥다.
그런 점에서 여기저기에 기념관과 박물관을 설립해 놓은 강진군, 완전 칭찬해!! 내가 지금 사는 곳도 군인데 기념관 같은 거 하나도 없단 말이야.
시문학파 기념관 | http://www.gangjin.go.kr/simunhak/index.do
2012년에 개관, 1930년대 순수시 운동을 전개했던 문학 동인회인 시문학파 구성원인 영랑 김윤식, 용아 박용철, 정지용, 연포 이하윤, 위당 정인보, 수주 변영로, 김현구, 신석정, 허보 등 아홉 시인의 육필 및 유품, 저서, 1920~50년대 문예지 창간호 30여종, 1920~60년대 희귀도서 500여종 등을 전시하고 있다.
「시문학」 잡지는 1930년, 즉 일제강점기에 창간되었다. 당시 문화통치에서 무단통치로 넘어가는 시기였기 때문에 문학운동에도 여러 변화가 있었다고 한다. 시문학파는 그 당시 유행했던 감상적 낭만주의에서 벗어나 순수시 운동을 주도하여, 일제강점기에 순수문학을 뿌리내리게 한 모태가 되었다.
우리는 詩(시)를 살로 색이고 피로 쓰듯 쓰고야 만다. 우리의 詩(시)는 우리 살과 피의 매침이다.
그럼으로 우리의 詩(시)는 지나는 거름에 슬적 읽어치워지기를 바라지 못하고 우리의 詩(시)는 열 번 스무 번 되씹어 읽고 외여지기를 바랄 뿐, 가슴에 늣김이 잇을 때 절로 읇허 나오고 읇흐면 늣김이 이러나야만한다. 한 말로 우리의 詩(시)는 외여지기를 求(구)한다.
이것이 오즉 하나 우리의 傲慢(오만)한 宣言(선언)이다.
사람은 生活(생활)이 다르면 감정이 갓지 안코 敎養(교양)이 갓지 안으면, 感受(감수)의 限界 (한계)가 따라 다르다. 우리의 詩(시)를 알고 늣겨줄 만흔 사람이 우리 가운대 잇슴을 미더 주저하지 안는 우리는 우리의 조선말로 쓰인 詩(시)가 조선사람 전부를 讀者(독자)로 삼지 못한다고 어리석게 불평을 말하려 하지도 안는다.
이것이 우리의 自限界(자한계)를 아는 謙遜(겸손)이다. ...
「시문학」 창간호 편집 후기
시절이 일제강점기라 당시 신문에는 일어와 한자, 한국어가 혼용되어 있다. 동아일보에 신간소개로 시문학 제3호에 대한 내용이 실려있는 부분 (좌측 상단에 네모칸이 쳐져 있는 부분).
꾸준히 신문에 실릴 정도로 영향력이 있는 동인 활동이었던 듯 싶다. 하긴 멤버가 그 유명한 김영랑, 박용철, 정지용이다. 어두운 시대에서도 문학에 대한 열정으로 이념과 정치의식을 배제하고 언어의 아름다움에 집중하여 글을 쓴 시인들. 9인 중에서 가장 유명한 세 분에 대하여 올려본다. (글 출처: 강진군청)
영랑(永郞) 김윤식(金允植, 1903. 1. 16 ~ 1950. 9. 29)은 전남 강진군 강진읍 남성리 211번지에서 부친 김종호와 모친 김경무 사이에 3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15년 3월 강진보통학교를 졸업한 그는 이듬해 상경하여 기독청년회관에서 영어를 수학한 후 휘문의숙에 진학하였다.
휘문의숙 재학시절이던 1919년 3월 1일 기미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영랑은 자신의 구두 안창에 독립선언문을 숨겨 넣고 강진에 내려와 독립운동(강진 4․4운동)을 주도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대구형무소 등에서 6개월간의 옥고를 치렀다.
1920년 일본으로 건너가 청산학원(靑山學院)에서 수학한 그는 용아 박용철 등과 친교를 맺었다. 1923년 관동 대지진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한 후에는 시 창작활동에 몰두하였다.
영랑은 1930년 3월 창간한 『시문학』지를 중심으로 박용철, 정지용, 이하윤, 정인보, 변영로, 김현구, 신석정, 허보 등 당대 최고의 시인과 더불어 우리 현대시의 새 장을 열었다. 1934년 4월 『문학』지 제3호에 불후의 명작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발표하였으며, 1935년 『영랑시집』을, 1949년에는 『영랑시선』을 출간하였다.
영랑은 조국 해방이 이루어질 때까지 창씨개명과 신사참배 및 삭발령을 거부한 채 흠결 없는 대조선인으로 의롭게 살았다.
광복 후 신생 정부에 참여해 공보처 출판국장을 지냈던 그는 1950년 한국전쟁 때 부상당하여 9월 29일 서울 자택에서 47세를 일기로 타계하였다. 영랑은 생애 86편의 시를 남겼으며, 정부에서 2008년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하였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제 1회 용아 박용철 문학상 수상자는
현재 문체부 장관인 도종환 시인이시다.
용아(龍兒) 박용철(朴龍喆, 1904. 6. 21 ~ 1938. 5. 12)은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정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6년 광주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이듬해 휘문의숙에 입학했다가 바로 배재학당으로 전학, 1920년 졸업을 몇 달 앞두고 자퇴했다. 그 뒤 일본 아오야마 학원(靑山學院) 중학부를 거쳐 1923년 도쿄 외국어학교 독문과에 입학했으나 관동대지진이 일어나자 귀국했다. 귀국 후 연희전문에 입학했으나 몇 달 뒤 자퇴하고 문학에만 전념했다. 1938년 5월 후두결핵으로 타계(34세)했다.
그가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아오야마 학원 시절 영랑과 사귀면서부터이다. 1930년 김영랑· 정지용과 함께 시동인지 『시문학』을 창간해 편집과 재정을 맡아보면서 본격적인 문단활동을 하게 된다. 『시문학』 창간호에 「싸늘한 이마」,「떠나가는 배」, 「비 내리는 밤」 등을 발표했다. 1931년 『문예월간』에 이어 1933년 『문학』지의 편집을 맡아보면서 번역가· 비평가로 활동했다. 1935년 시문학사에서 일하면서 『정지용 시집』·『영랑시집』을 펴냈으며, 해외문학과 극예술연구회에 참여해 입센의 「인형의 집」 등을 번역하기도 했다. 특히 1935년 12월에 발표한 「올해 문단 총평」에서는 김기림과 임화의 시를 비판하고 정지용의 시를 옹호해 임화와 기교주의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 뒤 발표한 평론 「시적 변용에 대하여」(『삼천리문학』, 1938. 1)는 그의 시론의 뿌리를 보여주는 평론으로서 계급주의와 민족주의 문학 모두를 배격하고 존재로서의 시론, 즉 선시적인 것에 더욱 의미를 두었다.
나 두 야 간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거냐
나 두 야 가련다
아늑한 이 항군들 손쉽게야 버릴거냐
안개같이 물어린 눈에도 비최나니
골잭이마다 발에 익은 묏부리 모양
주름살도 눈에 익은 아, 사랑하던 사람들
버리고 가는 이도 못 잊는 마음
쫓겨가는 마음인들 무어 다를거냐
돌아다보는 구름에는 바람이 희살짓는다
앞 대일 언덕인들 마련이나 있을거냐
나 두 야 가련다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거냐
나 두 야 간다
정지용(鄭芝溶, 1902. 5. 15 ~ 1950 납북)은 충북 옥천에서 한의사인 아버지 태국(泰國)과 어머니 정미하(鄭美河)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났다. 12세 때 송재숙(宋在淑)과 결혼했으며, 1914년 아버지의 영향으로 가톨릭에 입문했다. 옥천보통학교를 마치고 휘문의숙에 입학해서 박종화· 홍사용· 정백 등과 사귀었고, 박팔양 등과 동인지 『요람』을 펴내기도 했으며, 신석우 등과 문우회(文友會) 활동에 참가하여 이병기· 이 일· 이윤주 등의 지도를 받았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이선근과 함께 '학교를 잘 만드는 운동'으로 반일(半日) 수업제를 요구하는 학생대회를 열었고, 이로 인해 무기정학 처분을 받았다가 박종화· 홍사용 등의 구명운동으로 풀려났다.
1923년 4월 일본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 영문과에 입학했으며, 유학시절인 1926년 6월 유학생 잡지인 『학조(學潮)』에 시 「카페 프란스」 등을 발표했다. 1929년 졸업과 함께 귀국하여 이후 8·15해방 때까지 휘문의숙에서 영어교사로 재직했고, 독립운동가 김도태, 평론가 이헌구, 시조시인 이병기 등과 사귀었다. 1930년 김영랑과 박용철이 창간한 『시문학』의 동인으로 참가했으며, 1933년 『가톨릭 청년』 편집고문으로 있으면서 이상(李箱)의 시를 세상에 알렸다. 같은 해 모더니즘 운동의 산실이었던 구인회(九人會)에 참여하여 문학 공개강좌 개최와 기관지 『시와 소설』을 간행했다.
1939년에는 『문장』의 시 추천위원으로 있으면서 박목월· 조지훈· 박두진 등의 청록파 시인을 등단시켰다. 1945년 해방이 되자 이화여대로 옮겨 교수 및 문과과장이 되었고, 1946년에는 조선문학가동맹 중앙집행위원 및 『경향신문』 주간이 되어 고정란 「여적(餘適)」과 사설을 맡아보았다. 1950년 6·25 때 납북되었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립어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傳說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의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안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줏던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집웅,
흐릿한 불빛에 돌아 앉어 도란 도란거리는 곳,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기념관 중간중간에 놓여있는 시집 모형. 조금 탐난다.
김영랑과 박용철이 서로 교류하면서 보낸 편지들. 물 흐르듯이 쓴 필체가 어쩐지 좀 귀엽다.
이 기념관에는 역사가 오래된, 귀중한 시집들이 전시되어 있어서 좋았다.
표지에서 느껴지는 빈티지함이 마음에 든다. 요즘 책과는 조금 다른 감성.
9인 중 한 분인 신석정 시인의 작품집, 「빙하」와 「슬픈 목가」.
9인 중 한 분인 김현구 시인의 시 「님이여 강물이 몹시도 퍼렀습니다」.
안쪽에 시집들이 더 전시되어 있어서 가보았다.
조국강산, 사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강강술래, 옹호자의 노래
다른 건 둘째치고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모르면 한국인이 아니다. 1948년 발행.
3인 청록집, 진달래꽃, 육사시집, 님의 침묵
여기 또 모르면 간첩인 작품들이... 표지들이 아주 귀엽다.
당시의 디자인 감각도 지금 못지 않다.
학생문단, 자유문학, 신문예, 시문학, 문학계 창간호
동방평론, 문학, 현대문학 창간호
어떤 이들이 아주 소중하게 간직해왔을 손때 묻은, 세월 깊은 시집들을 보고 있으니 기분이 아주 묘해졌다. 일제강점기 시대에도 문학을 꽃피우던 시인들... 요즘 시대에 태어났다면 어떤 작품을 쓸 수 있었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또 현대의 순수시는 계보가 어떻게 이어져왔는지 궁금증이 일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요즘 시를 접한지 꽤 된 거 같다. 시집 한 권을 사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방문이었다. 강진 감성여행 취지에 딱 맞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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