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 :: 저항 시인 김윤식의 시가 피어나는 영랑생가


지난 글 : 2017/10/28 - [발자취 足跡/한국 大韓民國] - 강진 :: 다산 정약용의 유배시절 첫번째 거처 사의재(四宜齋)


강진에 고작 하루 있었을 뿐인데, 거쳐온 곳이 많아서 포스트가 아직 안끝났다. 평소 같으면 강진에 대한 글을 전부 다 쓰고 다음 여행기를 쓸테지만 어려울 거 같다. 강진에 있었을 때 다녀온 곳들을 다 올리면 11월이 끝나가리라는 예감.... 안돼




사의재를 다녀온 후 간 곳은 시인 김영랑(본명 김윤식)이 태어난 곳, 영랑생가이다. 강진 감성 여행을 담당(?)하는 한 축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옆에는 김영랑 시인의 '모란이 피기까지는' 을 모티브로 한 세계 모란공원이 있다.




영랑생가는 입구부터 초가집으로 되어 있어 알아보기 쉽다.




옆에는 자그마한 빌라가 있다. 거리는 깨끗한 편이다.




입장료는 따로 없기 때문에 들어와서 보면 된다. 

안쪽에 들어가자마자 깔려 있는 잔디 너머로 오손도손 소년소녀들이 모여 책을 읽고 있다.




입구 옆에는 강진군 우수 농·특산물 무인판매장이 있다. 무인이라 아무도 없다!

날씨가 아주 습해서 끈적끈적했는데 이 곳만 시원해서 잠깐 들어갔다 나왔다. 에어컨 짱.




건물 안쪽에는 강진의 추천관광지를 지도와 함께 안내해놓았다. 참조하기 좋다.




영랑생가 | Birthplace of Yeongnang (국가지정문화재 중요민속자료 제252호)

이 곳은 우리나라 대표 서정시인이자 항일 민족지사였던 영랑 김윤식 선생(1903~1950)의 생가이다. 선생은 이곳에서 1903년 1월 16일 부친 김종호와 모친 김경무 사이에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15년 3월 강진보통학교를 졸업한 선생은 이듬해 상경하여 기독청년회관에서 영어를 수학한 후 휘문의숙에 진학하였다.


휘문의숙 재학시절이던 1919년 3월 1일 기미 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선생은 자신의 구두 안창에 독립선언문을 숨겨 넣고 강진에 내려와 독립운동(강진 4.4운동)을 주도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대구형무소 등에서 6개월간의 옥고를 치렀다.


1920년 일본으로 건너가 청산학언에서 수학한 선생은 용아 박용철 선생 등과 친교를 맺었다. 1923년 관동 대지진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한 후에는 시 창작활동에 몰두하였다.

영랑은 1930년 3월 창간한 「시문학」지를 중심으로 박용철, 정지용, 이하윤, 정인보, 변영로, 김현구, 신석정, 허 보 등 당대 최고의 작가들과 더불어 우리 현대시의 새 장을 열었다. 1934년 4월 「문학」지 제3호에 줄후의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발표하였으며, 1935년 「영랑시집」을, 1949년에는 「영랑시선」을 출간하였다.


선생은 조국 해방이 이루어질 때까지 창씨개명과 신사참배 및 삭발령을 거부한 채 흠결 없는 '대조선인'으로 외롭고 의롭게 살았다. 광복 후 신생 조국 정부에 참여하였던 선생은 1950년 한국전쟁 때 부상당하여 9월 29일 서울 자택에서 47세를 일기로 타계하였다.


영랑생가는 1948년 선생이 서울로 이사한 후 몇 차례 전매되었으나, 1985년 12월 강진군이 매입하였고, 1986년 2월 전라나도 지방문화재로 지저오디었으며, 2007년 10월 국가지정문화재로 승격되었다.

정부는 2008년 선생에게 금관문학훈장을 추서하였다.



잔디가 깔려있는 마당에는 영랑 선생의 시가 새겨진 돌들이 놓여있다.




영랑생가는 크게 안채, 문간채, 사랑채 3군데로 구분이 가능하다.

처음 발견되었을 때는 사랑채가 뜯겨 없어졌었다고 한다.




담벼락에 담쟁이덩굴이 가득한 곳에 중요민속문화재임을 알리는 비석이 마음에 들어서 첫번째 사진으로 지정.




앞쪽의 문간채로 들어가면 안채가 나온다.




문간채로 들어가기 전에 왼켠에 놓여있는 「모란이 피기까지는」 전문

김영랑 시인의 시가 집 곳곳에 새겨져 있어서 좋다.




전체적인 파노라마




문간채 너머로 안채가 보인다.




문간채 지붕의 안쪽

하얀 벽에 서까래들이 확실히 전통가옥이라는 느낌.

이 색 배합을 좋아한다!!




지붕을 타고 바닥에 이상한 기름? 같은 것이 떨어져 있었다.

뭐지? 너무 더워서 녹은건가?




김영랑 시인이 강진에서 거주할 때 집 주변에는 동백꽃과 대나무가 가득했다고 한다.




안채에는 가마솥과 소품들이 걸려 있다.




안채 바깥에는 높다랗게 지어져 있는 마루가 있다.

여름에 저기서 수박 먹으면 정말 시원하고 좋을 거 같다.




김영랑시인의 초상화가 놓여있는 방. 시는 많이 접해봤어도 얼굴은 처음 본다. 굳건하고 강한 이미지가 느껴졌다.

김영랑 선생은 한국전쟁 때 북한군이 후퇴하면서 그냥 아무나 맞으라고 쏜 유탄에 운나쁘게 맞아 돌아가셨다고 한다.




안채 뒤켠에는 모란공원으로 이어지는 길이 있다.

거리가 얼마나 될 지 몰라서 이쪽으로 가지는 않았는데 알고보니 지름길이었다.




마당의 한가로운 풍경




장독대 옆에도 그의 시가 피어있다.

(그런데 왜 장독 뚜껑이 이렇게 깨져있는 거지..)




마삭줄은 덩굴식물로 꽃향기가 아주 좋다고 한다.




안채에서 사랑채로 이어지는 문 (사진에서 보이는 하얀 건물이 안채다)




사랑채는 복원을 새로 한 곳이라서인지 아주 깔끔한 느낌이었다.

뒤 쪽에 화장실이 있는데, 처음에는 그냥 부속 건물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분위기에 잘 녹아들게 만들어놓았다.




자그마하지만 잘 꾸며놓은 사랑채의 정원

와송이 인상깊다.



김영랑 선생의 시만 몇 가지 들어보았지, 실제로 그 분이 강진에서 태어나 자랐다는 것은 몰라서 별로 기대하지 않고 왔던 곳인데, 생각보다 분위기도 좋고 잘 꾸며져 있어서 좋았다. 제일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역시 시 구절을 돌에 새겨서 여기저기에 세워놓았던 점. 어두웠던 일제강점기에 시인 김영랑이 남긴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시들을 읽으면서 여러가지 감흥을 느껴볼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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